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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Oct 31. 2024

09. 집에 가라고요?

10시간 이상 오버타임 근무는 곤란합니다.

지난 글에서는 독일 오피스 첫 출근길에 느꼈던 설렘을 담아봤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저와 남편 모두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던 몇 가지 독일 오피스 문화에 대해 나눠보려 합니다.


1. Clock in / out 문화

제가 다니는 독일 회사 지멘* 한국 지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제 이름과 사진이 박힌 회사 배지를 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받았었고, 그래서 독일 본사에서 다시 새로운 배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배지는 이전의 두 나라와는 다른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퇴근 시에 Badge in / out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건물 입구에는 전자기기가 있고 실시간으로 직원들이 언제 들어가고 나가는지 Badging을 통해 기록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지요. 처음에는 이 문화가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까먹고 Badging을 빼먹은 적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매니저가 manually 기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남편이 아침 일찍 7시에 출근 도장을 찍고, 저녁 9시가 되어 퇴근한 것이 문제가 되었지요. ‘응? 야근 좀 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거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자정이 넘어갈 때까지 일한 적이 많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저녁 9시야 뭐 이른 시각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남편의 매니저는 심각한 톤의 이메일을 통해 “사무실에서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지멘*에는 노동조합 Worker’s council 이 있고 직원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사무실에서의 근무 시간을 10시간 이내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약 10시간 이상 근무를 2번 이상 할 경우, 그 직원의 매니저는 권고 조치를 받을 수 있으며,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매니저가 상당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벌금은 수백만 원이 아닌, 천만 원 단위의 큰 금액이었습니다. 매니저가 심각한 이메일을 보내고 남편을 따로 불러 이야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독일은 정말 노동자가 보호받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관리자들 또한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구나. 한국에서 일할 때 독일에 연락하면 담당자들이 퇴근해 없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오후 4~5시가 되면 독일 본사 담당자들이 퇴근하고 없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6시부터 와서 일하고 10시간이 넘지 않도록 오후 3시 또는 4시에 퇴근하는 것이었어요)


2. 가족이 우선! 너그럽게 이해하는 문화

독일이 선진국이니 유치원 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2017년 7월에 먼저 도착해서 유치원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제가 아들과 10월에 합류했을 때까지도 유치원 자리를 얻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 조마조마했습니다.


집 근처 약 200여 곳의 데이케어와 유치원에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자리를 알아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Keine Platz!" (자리가 없어요)였어요. 이게 제가 처음 외운 독일어 표현 중 하나랍니다. 시어머니께서 잠시 도와주셨지만 관광 비자로 최대 90일만 머무실 수 있었고, 결국 싱가포르로 돌아가셔야 했죠. 그래서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고, 감사하게도 저희와 같은 외국인 가족을 지원하는 담당자분이 우리 상황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1월부터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고, 그날 남편과 꼭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얻은 유치원 자리에서 처음부터 종일반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원장님께서는 처음엔 한 시간씩, 이후 두 시간, 세 시간씩 점차 시간을 늘리라고 권장하셨습니다. "네?!" 하고 놀랐어요. 유치원까지 집에서 한 시간씩 걸려 가는데, 한 시간만 있다가 데려가라니 정말 당황했죠. 그러나 아이의 적응을 위한 절차라 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아들이 빠르게 적응해 2주 만에 이 적응 기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지내는 시간을 즐거워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저와 남편도 용기를 얻었답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는데요, 아이의 적응 기간을 독일 동료들과 매니저가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출산휴가를 대체하는 2년 계약직이라 ‘이러다 잘리면 어쩌나, 사람들 눈밖에 나지는 않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모두가 "No problem"이라며 쿨하게 받아들여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3. Turnaround Time (업무 처리 속도)

유치원 적응 기간 동안 팀원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부서의 업무와 툴을 최대한 빨리 익혀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독일인 in-country 매니저와 인도계 미국인 매니저 두 분에게 보고했는데, 매니저는 “부서 툴이 매우 많고 복잡해 6개월 정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료들에게 묻고, 그들이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빠르게 익혔고, 3주 만에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죠. 이전 경험 덕분에 여러 툴을 빠르게 습득하고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했는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이 "클라라, 너무 빨리 답하지 말아 줘. Turnaround time은 5일이야. 5일 안에 답하면 돼. 네가 이렇게 빨리 답을 하면 우리가 곤란해져"라고 말한 겁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했던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죠. 답을 줄 수 있을 때 바로 주는 게 맞지 않나, 일부러 5일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나…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곧 제 방식대로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고 동료의 Pace에 맞춰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프로젝트의 Go Live를 앞두고, 저에게 피드백을 주었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솔직히 놀랐어. 네가 이 프로젝트를 이렇게 잘 마무리할 줄 몰랐거든." 예상치 못한 칭찬에 뿌듯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저보다 기존의 독일어를 하는 외부계약직이 이 자리에 오길 바랐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팀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기여해 제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와 남편 둘 다 독일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라는 사실을 배웠고, 그로 인해 더 직접적이고 명확한 소통이 필요함을 깨달았답니다.


이 글은 저의 독일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물론 다른 경험을 하신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 제한된 경험이지만 저의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눠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독일의 오피스 점심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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