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풀 Mar 20. 2022

게임과 HRD

성향 혹은 성과

 근자에 자주 들려오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용어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력 개발을 위해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 회사를 떠나 다국적 기업으로 옮길 때의 일이다.   

나는 출장으로 천혜의 휴양지라고 할 수 있는 호주 동남쪽 해안 브리스베인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다. 

그리고 곧바로 회사에서 지급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차로 약 30분 거리의 숲 속에 위치한 보이스 카우트 캠핑장으로 향한다. 


 도착해 보니 나와 같은 복장을 한 10여 명과 아마도 진행 요원으로 보이는(선글라스에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마치 군대 시절 훈련소에서의 조교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몇 사람이 움직인다. 

유일하게 얼굴이 익은(최종 면접에서 본 적이 있는 본사의 인사 담당 임원) 사람이 나와 간단한 인사말과 일정을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마치 인신매매범에게 끌려온 사람들처럼 진행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4박 5일의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처음 이틀은 외줄, 세줄 타기와 가장 공포스럽다는 11미터 말뚝에 올라가 1미터 전방의 로프를 점프해 잡기(물론, 안전 줄을 허리에 동였지만)등 그야말로 유격 훈련장에 온 듯 굴리더니 사흘째 되는 날엔 3인 1조가 되어 4미터 공중에서 자유 낙하를 시켜도 깨지지 않는 구조물 만들기 게임을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호텔 세미나 실에 모여 ‘론칭 애니랜드(Launching Anyland)’라는 장차 진출 예정인 신규시장(미루어 짐작케 데 중국)을 염두에 둔 전략을 전원이 한 팀이 되어 수립하게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국적 기업인 본사가 아시아 11개국(14개국에 진출 중)의 마케팅 매니저를 교체하거나 신규로 채용하고 최종 평가를 하는 과정이었다. 


 고용 계약서(service agreement)에는 우리말로 하면 수습기간(probation period)쯤 되는 조항이 있다. 입사 초기에 이런 프로그램을 돌리는 이유는 계약 후 3개월 이내에 고용 여부의 최종 확정을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호주 출장 후 돌아와 얼마 안 돼서 최종 고용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사장으로부터 다른 나라의 2명(한 명은 자의, 다른 한 명은 회사 거부)이 회사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브리스베인에서 경험한 며칠 간의 일정은 모두가 게임이었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둘, 셋이서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전체가 모여서 서로 경쟁도 하고 문제 풀이도 하면서 보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수습 기간이 끝난 뒤 대표 이사와의 면담에서 최종적으로 듣게 되었다. 


  MBTI가 개인의 ‘성향’ 파악에 도움을 주었다면 게임을 통한 평가는 각 개인의 ‘성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규 채용이나 경력 면접 시 사용하는 게임은 반드시 고득점만이 능사는 아니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역량은 게임의 이곳저곳에 각기 다른 레벨(수준)로 평가되도록 고안되었으며 그 결과의 총량은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량을 파악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신입을 위한 단합대회인 줄 알고 참가했던 출장이 게임을 통한 인사관리(HRD)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는 기억이 오늘 게임화로 되살아 난다. 달라진 점이라면 당시엔 오프라인에서 게임을 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그 놀이터를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다양한 인사 관련 게임과 이를 채택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노동 경쟁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