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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Mar 31. 2022

일과 배움과 놀이의 융합

경계의 소멸

 조리사 자격증을 딴지 얼마 안 된 요리사가 운 좋게 큰 식당에 취업을 했다. 

남들은 다 퇴근했는 데 기꺼이 혼자 남아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한다. 

일일까 배움일까 아니면 놀이일까? 모두 다에 해당한다. 

'아는 게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게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이미 2천5백 년 전에 공자는 간파했다. 

이 신참 요리사는 즐거운 맘으로 일과 배움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가만히 보면 주변에 행복은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사람에게서 찾아진다. 

게임화(Gamification)가 주목받는 이유다.


아래 글은 최근에 필자가 한국 게임화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웹진(http://www.gami-journal.com)에 기고한 글이다. 다소 길지만 앞서의 주장에 대한 보충 삼아 전재한다.


 밤새 동굴 안에서 모닥불 하나로 추위와 맹수의 위협을 견뎌 낸 아버지가 몽둥이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간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냥에 나서는 중이다. 그 뒤를 아들이 뒤쫓는다. 아버지는 일하러, 아들은 배우러 가는 길이다. 그날 부자는 운이 좋게 저녁거리가 될 만한 짐승을 잡아 의기양양하게 집(동굴)으로 돌아온다. 남은 가족과 배불리 먹은 뒤 온 가족이 모닥불 주변에 모여 흥겹게 논다. 놀이가 시작된 셈이다.


이렇듯 일과 배움과 놀이는 본디 하나였다. 자연, 의와 식과 주도 개인 혹은 가족 단위의 자급자족이다. 그리고 이런 생활 방식은 농업 사회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연배가 조금 있는 세대라면 할아버지가 토담집을 짓고 새끼를 꼬아 지붕에 얹거나 가마니를 짜던 모습을, 할머니가 물레를 틀어 옷감을 짜고 장 담그고 찬거리를 만들 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것이 산업사회가 들이닥치면서 생산과 소비를 필두로 모든 것들이 생산성을 위한 분업이라는 이름으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일할 사람을 모아 공장으로, 배울 사람을 모아 학교로, 아픈 사람을 모아 병원으로 구분 짓는 규모의 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일과 배움이 갈라지면서 놀이는 실종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이는 생산을 위한 휴식이라는 핑계로, 레크리에이션 형태로 바뀐다. 그러는 사이 일은 노동으로 전락해 버린다. 


정보 사회 곧 후기 산업 사회는 탈 대량화를 지향한다. 산업사회의 대량화를 위한 분업이 통합, 융합,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재결합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인구 증가로 인한 환경 파괴의 정도에 비해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참다못한 지구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통해 그 변화를 가속한다. 이젠 재택근무와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 되고 오히려 더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 게임이 급성장한다. 아직은 아날로그 세대의 저항과 디지털 세대의 환영 전선이 냉랭하다. 그 와중에 게임화(Gamification)에 관한 공론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접목 시도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게임” 그 자체보다 ‘게임화’라는 용어가 갖는 표현의 의미는 어떤 변화를 위한 과정 혹은 중재나 촉매제로서의 의미가 있다. ‘게임적인 사고와 기법을 활용해 유저를 몰입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함축한 지커맨과 커닝햄의 정의가 이를 대변한다.


산업 사회 이전의 놀이가 일과 배움의 한 영역이고 중재자였다면 정보 사회의 게임은 그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미래의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라면 일과 배움과 놀이가 아우러지는 공간에 관심 가져볼 일이다. 사실 이런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스포츠, 연예, 게임 산업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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