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끝날 폴리매스
오로지 새로운 정보나 소식이라고는 신문에만 매달리던 시절, 한 일간지의 고정 난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규태 코너’. 인터넷을 뒤져보니 1983년에서 2006년까지 무려 6,702회의 한국 최장수 칼럼 기록을 남기고 고별 칼럼을 쓴 이틀 뒤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박학다식하거나 데이터 베이스 관리의 귀재로 부동의 1위로 남아 있다
폴리매스(polymath)는 음독 그대로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는 책 제목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이 다방면에 박식하고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단어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도 에디톨로지에서 근간 창조적 시선에 이르기까지 이 부분을 다룬다.
잊을 만하면 당혹스러운 일을 겪곤 한다. 멀쩡하던 플래시 메모리, 즉 USB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거다. 몇 번을 낑낑거리다 결국엔 인터넷을 뒤져 용산의 전문가에 의뢰하지만 대개는 회복 불능이다. 처음에는 망연자실, 아연실색한다. 거기에 거의 끝나가는 논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번역을 얼추 마쳐 가는 원고도 있다. 심사를 의뢰받은 논문의 의견서도 거기에 있지 싶다. 하지만 워낙 어수선하고 꼼꼼하지 못한 탓에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뒤지다 보면 부스러기 조각들이 나온다. 이렇게 저렇게 맞추다 보면 잃어버린 파일만큼은 못 돼도 얼추 복구가 가능하다. 여러 차례 주변으로부터 클라우드를 왜 안 쓰느냐, 외장 하더라도 써라 등등의 지적을 받을 때마다 그래야지 하지만, 결국엔 당장에 편한 메모리에만 의존하다 보니 어느새 열쇠꾸러미처럼 대여섯 개가 책상 위에 굴러 다닌다.
언젠가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님의 세 개의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와 메모리의 분류, 저장 시스템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기록이 실 시간으로 주제어나 목록 별로 분리, 입력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 상식에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싶은 시스템을 당신 스스로 구축하고 운영하신 단다. 오늘은 정민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다. 모두가 엄청난 다작의 작가들이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정밀한 데이터 관리다.
바야흐로 다시 일인다역 시대를 맞고 있다, 운전병도 타이피스트도 엘리베이터 걸도 필경사도 사라진 지 오래다. 회사건 학교건 웬만한 직급이 아니고서는 이 모두를 당연히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다. 마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러셨듯이… 흙벽돌 만들어 담쌓고 새끼 꼬아서 이엉덮어 집을 짓듯이, 고추장, 된장 담그고 옷감 짜듯이 의식주를 온전히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게 불과 두서너 세대 전의 일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임한 친구가 얼마 전 해외여행을 다녀온 불편함을 토로한다. 20여 년을 수출부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한 만큼 여러 나라를 비행기 타고 다니며 입출국하는 데 이골이 났을 법도 한데 영 불편하더라는 거다. 왜? 키오스크니 화면 인식이니 하며 온통 비대면의 기계 접속으로 바뀐 탓이다.
세상은 점점 더 일인다역을 요구한다. 그 장벽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가로막고 서 있다. 어쩌랴, 고령화 사회로 어물쩍 넘기기에는 갈 길이 머니 어떻게 든 좇아갈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