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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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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Mar 05. 2016

미야코에 닿다

낯선 땅 교토로 떠난 여름

불안과 기대로 들뜬 M006편이 간사이 국제공항에 닿았다. 

서른한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입국심사관은 재류카드와 지정서를 발급하느라 분주하면서도 시종일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애매한 말들을 내뱉는다. 


긴장한 탓일까. 

그것이 전부 반말이었음에도 내겐 기분이 상할 틈조차 없다.


이마에 배어 나온 땀을 닦으며 심사대를 통과하자 짐 찾는 곳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멈춰버린 컨베이어벨트 구석에 코발트블루색 30인치 캐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그 퍼런 덩어리보다도 우울해 보이는 승무원 한 명. 

짐 주인이 어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나 뭘 저렇게 싸 갖고 왔지."


엉거주춤 짐을 받아 들고 출구로 향하자 세관원도 나랑 똑같은 의문을 가졌나 보다. 

짐을 열어보잔다. 

여름옷, 가을옷, 겨울옷... 잡동사니들. 

그리고 조미 김 12팩 세트.


"... 손무르?"


그래요. 선물 맞아요.

누구에게 돌아갈 선물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입국장을 나서자 밤공기가 덥다. 

검은색 엠케이 택시 승합차는 교토 어딘가에 살고 있을 일곱 명의 여인과 함께, 방금 한국에서 도착한 어리숙한 남자 한 명을 태우고선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보, 차 안이 조용하니까요."


휴대폰을 양손으로 받쳐 든 중년 여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서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느낀다.

그 여인의 말이 마치 주문이라도 된 듯이, 그 뒤로 차 안은 내내 침묵이었다.




한참을 달려 도달한 교토역에서 여덟 명의 승객은 소형 택시 몇 대로 흩어졌다. 

동쪽으로 향하는 차에는 나와 어떤 여인이 동승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무릎에 면세점 봉투들을 잔뜩 올려놓자마자, 숨도 안 돌리고 말을 붙인다. 


"워킹홀리데이? 교토에서 1년이씩이나! 

잘 오셨어요. 괜찮은 선택이에요. 교토, 살기 편하고.

"주소 좀 봐도 될까? 어려우면 기사님께 대신 설명해 드려도 되는데."


교토의 바둑판 모양 길을 달리길 십여 분 


"주소대로라면, 이 골목인 것 같습니다만."


정중한 택시기사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어둠이 깔린 자갈길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챙겨 내린 나를 두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힘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캐리어를 끌며 길을 따라 들어서자 교토의 오래된 마치야 건물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육중한 바퀴가 자갈을 헤치고 굴러가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이 싫다.

하지만 이걸 들고 저기까지 걸어가는 것은 무리겠지.

캐리어는 그렇게 한참을 요란하게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길.

둥그런 옥외등에 새겨진 글자가 틀림없이 찾아왔음을 말해준다.


한 숨 들여 쉬고 누른 초인종.

화상통화로 이미 얼굴이 익숙한 여주인의 환영.

짤막한 인사 

어색한 식탁

한밤중의 중화냉면.


그리고 지쳐서 짐도 못 풀고 잠들어버린 이층 다다미방.


여름이 한창이었던 교토에서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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