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피아노 숙련자들도 적지 않게 겪는 일이겠지만, 나 같은 초보자에게는 특히 새로운 곡을 배울 때 그것이 아무리 쉬운 난이도의 곡이더라도 단박에 쳐내기 힘든 부분이 언제나 한두 곳 튀어나와 번민에 빠뜨리곤 한다.
실력적으로 충분히 칠 수 있는 음형인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피아노력, 그러니까 '경험치의 부족'에서 비롯된 연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원인이 되어 자꾸만 손이 멈추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약간의 까다로운 부분이라면 두세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가끔씩 그 몇 번의 연습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진짜 복병이 등장하곤 한다. 초보자에게 있어 일종의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도저히 이제껏 순차적으로 배워 온 테크닉을 도입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프레이즈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은 특히 연습곡에서, 그것도 현대에 출시되는 이른바 '친절한' 교재에서보다는 낭만 시대 이전의 체르니 등의 고전적인 곡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체르니의 연습곡집은 최근의 트렌드인 '지상 레슨' 스타일의 교재와는 다르게 그저 숙련된 교육자의 생생한 레슨에 곁들이는 텍스트. 다시 말해 그저 '교재'였을 뿐이었기에,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이다. 아마 이러한 체르니를 필두로 하는 고전적인 교재가 나와 같은 독학생에게 썩 적합한 교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런 점에서도 고려되는 것인가 싶다.
나 역시 독학을 시작한 이래로 수차례 이런 난관을 겪어 왔고, 지금 현재도 하나의 곡에서 꽉 막혀 있다.
체르니 30의 12번째 곡. 오른손의 연타 연습곡이다.
이 곡에서 몸에 익혀야 할 핵심 기술인 연타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15마디째부터 나타나는 연속적인 오른손 아르페지오+연타 음형의 교차에 왼손 화음을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한쪽 손씩 따로 떼어 연습하면 그럭저럭 쳐지는데, 둘이 합치면 답이 없는 상황. 전부터 같은 음을 손가락 두 개로 바꾸어가며 연타하는 것을 많이 헷갈려했고 지금도 속도가 조금만 나면 몇 번 손가락으로 치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약한 부분인데... 이 프레이즈에서는 거기에 더해 '기본 손가락 번호에서 벗어난 아르페지오'까지 연속적으로 구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지경. 처음 연습할 때는 너무 답답해서 건반을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실제로 쳤던가...?)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된 상황.
이러한 '어려운' 부분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뻔하다. 반복 연습만이 살길.
"못 치겠다고요? 100번 치세요 100번"
가끔 피아노 전공생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면 장난 삼아 돌아오는 말. 어쩌면 많은 피아노 교육자들이 학생들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저 많이 쳐보라는 뜻의 비유겠거니 하고 화자나 청자나 별 의미 없이 농담처럼 넘기는 말이겠지만, 사실 이 말에 정답이 있다. 매우 무식한 방법 같지만 '100번 치기' 이만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100번 치기'가 말은 쉬워 보이지만,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전체 곡은 차치하고 한 부분만이라도 따로 떼어 100번씩 연습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실 취미생의 입장에서 아직까지 어떠한 곡도 100번씩은 연습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작정하고 많이 반복해 봐야 열댓 번이 고작일까. 100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것이다. 만약 여기가 잘 안 되네? 반복해서 연습해 봐야지 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 연습에 매진하더라도, 당신이 피아노 전공생이 아니라면 아무리 독하게 연습해 봤자 실제로 연습 회수를 헤아려 보면 장담컨대 스무 번도 전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사실 스무 번쯤 반복해서 연습하면 어떻게든 대충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손에 익게 마련이니까. 그것으로 만족(타협)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또 다음으로 넘어가고. 만약 몇 번의 연습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낼 만한 천재라면 모를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연습을 했다고 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늘 그렇게 대충 손가락 위치만 기억하는 것으로 곡을 때우고, 또 다음 곡에서도 비슷한 수준으로만 치고 넘어가고...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실력인 것이 당연하지.
그래서 문제의 체르니 30의 12번을, 작정하고 100번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리딩을 마치고 10번 미만으로 연습했을 때의 연주.
그리고 아래가 50회 연습 후의 연주. 카메라만 켜면 실력의 20%가 증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습의 효과가 가시적이지 않은가. 둘 사이의 간격은 단 하루다.
딱 50번의 연습에서 이 정도까지 실력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 50번 더 반복 연습하면 '내 수준에서의' 테크닉은 거의 완성될 듯하다.
못 치는 부분이 있다고? 그럴 땐 무식하게 100번 연습을 도입하자.
여러 번 치라는 의미의 100번이 아니라, 실제로 100번을 하나하나 카운트하면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대로만 연습한다면, 그 어떠한 난관이라도 100번 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