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진정한 보물은 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과정 속에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조금은 뻔한 말이지만
나는 이 문장이 참 좋다.
인간의 존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빛나며,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의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걸어온 길 위에는
늘 나의 생각과 기분, 그리고 변화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관계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에 생성되는 의미다.
사람은 누구나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 관계는 비로소 깊어지고 새로운 층위를 갖는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언니가 있다.
작년 겨울,
우연히 참여한 온라인 모임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나는 오랫동안 온라인 모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실생활의 인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벗고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만남을 꿈꾸던 나에게,
온라인 속의 만남은 전혀 겹치지 않을 것 같은 인연들을 알게 해 주었고 언니를 알게 되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 머물며 영어 학원 일을 하던 그녀는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섞어가며 외국에서의 삶을 들려주었다.
나는 언젠가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만난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언니와의 관계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투명하게 나누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한층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에게서 5년 후의 내 모습을 보았고,
그녀는 내게서 5년 전의 자신을 보았다.
이 교차된 시선은 마치 시간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우리가 각자의 길을 걷는 부분에 있어 선명함을 더해주었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딸의 이야기,
학원을 운영했던 경험,
유학과 부동산에 관한 대화까지…
우리는 공통의 화제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졌다.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아는 언니는 참 에너지가 넘친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나는 해보았으니까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태도는
니체가 말한 ‘삶을 긍정하는 힘’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하루는 늘 꽉 차 있고, 그 속에서 나는 배움을 얻는다.
어제 우리는 새해를 맞아 각자의 테마를 정해 글을 쓰기로 했다.
대학원 시절,
나는 새벽 글쓰기 모임을 통해
하루를 글로 열며 일상에 의미를 부여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참 좋았던 것이,
평소면 스쳐 지나갈 일들이 글감이 되는 마법을 경험해 보았다.
그냥 먹는 부대찌개도
학생의 지나가는 농담 한마디도
나에게는 좋은 글감이 되었고
의미가 되었다.
이번에도 언니와 함께 그런 시간을 다시 만들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카페 창업과 옥션을 주제로,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글을 써서 나누기로 했다.
글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고, 그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보물 같은 일이다.
또한
서로 바빠서 모든 시간을 나누지 않아도,
그저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아니 내가 지켜볼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 보물은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우리 이랬지”라는
또 다른 챕터로 우리의 삶을 채울 것이다.
50이 넘은 언니는 여전히 소녀 같다.
저녁 데이트를 앞두고 어떻게 매력을 어필할지 고민하며,
나와 팔짱 끼는 방법을 연습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여자의 삶은
10대나 20대나 40대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와 30대에
‘40대가 되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고민했던 내 생각은
40의 중반이 되는 지금 참으로 무색해진다.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 결국 삶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세대를 초월한다.
나는
언니와 함께
그리고
그와 함께
다가오는 2026년을 더욱 사랑스럽고 창조적으로 보내고 싶다.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삶을 훨씬 더 즐겁게 만드는 일이니까.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설사 매 순간을 보고하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서로의 눈빛 속에 따뜻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기록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