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궁금해하는 사람

나를 빛나게 하는 인연

by 에메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은 해방이었다. 그리고 힘이었다.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속 문장처럼,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발자취에 기대어 서 있지 않았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길 위에 놓여 있었고,

그 길은 때로 외롭지만 동시에 자유로웠다.


인연이라는 것을 정의한다는 건 나이가 들어도 쉽지 않다.

공을 들인 인연은 하루아침에 멀어지고, 무심했던 인연은 오히려 곁에 남는다.

나는 인연이라 생각하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정성을 다한다는 건 곧 기대가 있다는 뜻이고,

기대는 상대의 반응을 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상처를 남겼다.


아침부터 별것 아닌 일에 혼자 마음을 다치고,

커피를 소주처럼 들이켜던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큰 아이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 나에게는 친한 언니였다.


첫아이의 학교가 소규모라 엄마들의 활동이 많았고,

나는 그 속에서 많은 인연을 쌓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함께 아이들의 운동을 시키고

아이들을 놀리고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나중에는 부부 모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언니는 언제나 그 주축에서 조금 비켜서 있었다.

다만,

언니 특유의 매력과 분위기가 좋아

나는 개인적으로 종종 연락을 이어갔다.


인생의 큰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는 이혼을 결심했고,

조용히 그 동네를 떠났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내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는 건 자존심이 상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내 삶의 중요한 일이 그들의 소모적인 이야기로 변질되는 그림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제2의 삶에 집중하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갈 때,

그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충 이야기도 들었고, 예상은 했는데 바로 연락을 하자니 너에게 부담이 될 듯했어.”

그 한마디는 나를 다시 인연의 자리로 불러냈다.

언니는 부잣집 다섯째 딸,

발레리나 출신이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만났을 때는 삶의 무게에 눌려 있었다.

살이 붙고,

부부생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니도 싱글이 되었고,

삶의 껍질을 벗어내며 다시 빛을 찾았다.

우리는 그렇게 더 아름다운 자매가 되었다.


나처럼 유부녀에서 이혼녀로 바뀐 언니와 나는

더욱 돈독해졌다.

언니는 끊임없이 나를 챙겨주었고,

내 아이들을 보살펴주었다.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았던 언니에게

나의 아이 이야기가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웠고,

그 때문에 오해도 있었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언니라는 자리 때문에

비밀이 많은 언니에게 섭섭한 순간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그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는 친언니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언니는 언제나 내 행복을 빌어주었고,

내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조차 나를 궁금해했다.

그 꾸준한 관심과 애정은

내 삶을 다시 빛나게 했다.

오늘도 역시 별일 아닌 일로 머리가 복잡해진 나에게

언니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제시하며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인연은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껍질을 벗겨내며 진짜 모습을 마주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는,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고도 내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홀로 서는 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 인연이야말로 나를 더 빛나게 하고,

나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이미 지나간 일을 추모해 본들,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내는 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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