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

나의 일상 #4

by 에메

지난 수요일, 갑자기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뭐 해요? 우리 금요일에 스크린을 치던지 밥을 먹던지 할래요?”
“나 10시에 끝나는 거 알지?”
“어차피 저도 아이 챙기고 하면 그 시간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불금의 약속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둘만의 약속이 아닌, 어느새 다섯 명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우리 둘은 여자, 나머지 셋은 남자.
결국 동생이 아는 오빠들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의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오빠는 그 동생을 유난히 챙겼고, 두 오빠는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가 사랑받기 위해 재밌는 말을 하고 분위기를 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을 끝내고 간 그 자리에

그날의 피로도와 이 인연이 지속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런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자리가 끝나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비교적 중요한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향 때문에 항상 웃고, 싹싹하게 굴고, 인사도 잘하며
그렇게 나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어찌 보면

그렇게 행동하면서

나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의하고,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자리에서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꼭 이성적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 세 명의 남성들에게도 나는 ‘노력해야 할 존재’로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왜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마도 이는 인정 욕구(need for recognition)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떨쳐 내려고 해도 안 없어지는

인정 욕구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고,
어느 집단 속에서든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그 확신이 흔들릴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또한 이는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오빠가 유독 그 동생을 챙기는 모습에

그 동생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순간에

‘내가 덜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불안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은
단순히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내가 살아온 방식과 정체성의 일부였다.


결론적으로

그날의 불편함은,
내가 노력하지 않았을 때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항상 웃고, 항상 싹싹하게 굴며 만들어내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 주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인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이제는 어디서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물적인 본능보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 보면..


어디서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확인하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누군가의 인정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는 순간에도 피어날 것이다.


때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느껴지는 자리에서도,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중요함은 타인의 눈빛 속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금요일의 불편함은,
내가 여전히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나도 이미 충분하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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