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나의 일상

by 에메

“잔소리는 동물학적으로 우월감의 표현이다.”


얼마 전 TV에서 본 내용인데

먼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은 내 삶 속 장면들과 겹쳐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리고

두 딸


이렇게 삼대가 사는 우리 집은

잔소리의 향연이다.


조금은 웃긴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손녀들에게는 직접적인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대신

손녀들에게 하고 싶은 잔소리를

나에게 하시는데

가끔은

잔소리가 단순한 걱정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경험을 상대에게 심어 주려는 은근한 권위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라는 이름으로,

나처럼 살아가길 권하는 것이다.


긴 연휴

다섯 식구 너무도 즐겁게

여행도 하고

음식도 하고

즐거운 기억이 많았지만

틈틈이 부모님은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잔소리를 하셨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내 입장도 쉽지는 않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하는 말씀들을 하시니


그냥 듣고 넘기기엔

우리 아이들은 너무 MZ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간만의 출근길,

아침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서려던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를 고려해 고른 옷이고,

학원에서도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부모의 눈에는 늘 다른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세대의 기억과 권위가 묻어 있다.


연휴 동안의 부모님의 잔소리는 기억도 안나는 자잘한 말들이지만,

그 속에는 “나의 자리를 인정해 달라”는 마음이 숨어 있는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경험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존재의 무게를 확인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소리와 조언은 다르다.

잔소리는 기준의 강요라면,

조언은 존중 속에서 이루어진다.

부모의 삶을 존경하는 마음은 “존경하라”는 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진정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꿈이고,

부모 역시 아이들의 꿈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희망이며,

자녀에게 부모는 길잡이다.

그렇기에 세대 간의 소통은 잔소리의 반복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되 상대의 시대와 선택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이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존중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그때 비로소 잔소리는 조언으로 바뀌고,

세대 간의 간극은 이해로 메워진다.

잔소리라는 작은 파문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큰 강물 속에서 흘러가며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부모의 잔소리를 듣는 딸로서

잔소리를 해야 하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렵고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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