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by 에메

토요일 아침

이제 겨울이 가려는 건지, 창밖으로 희미한 햇살이 번져 들어왔다.


2월은 유난히 쉬는 날이 많아

토요일임에도 학원에 나와 수업 일수를 채워야 했다.

네 시간 남짓의 수업이지만,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오전 내내 마음은 허공을 맴돌았다.

아이를 훈련장에 데려다주고 잠시 운동을 한 뒤,

결국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오전을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흘려보내는 동안,

마음은 어딘가 공허했다.


아, 봄이 오는가 보다.


엄마는 오빠가 있는 태국에 가신다고 들떠 계셨다.

눈빛은 여행을 앞둔 설렘으로 반짝였고,

목소리에는 기대가 묻어났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뒤틀렸다.

오빠는 집안에 크게 기여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에게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은데도

엄마는 오빠를 유난히 좋아하신다.

그 애정의 무게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저렇게 짝사랑하는 듯한 모습은 여전히 불편하다.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짝사랑을 하게 될까.


며칠째 거실 한쪽에는 커다란 여행 가방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앞에 앉아 김치며 반찬이며 이것저것을 정성껏 싸고 계셨다.

오빠와 새언니는 끊임없이 집으로 택배를 시켰고,

할머니는 본인의 짐을 빼면서 하나라도 더 챙겨가려 애쓰셨다.


“그냥 택배로 보내라고 하지, 왜 엄마에게 그렇게 시키냐…”
“김치 10kg 보내면 거진 10만 원 돈이란다. 가는 김에 내가 가지고 가면 좋지.”


엄마의 거친 손이 분주히 움직일 때마다, 우리 아이들의 얼굴도 점점 굳어갔다.


“할머니 너무 고생하지 마…”
“할머니 불쌍해. 삼촌은 잘 연락도 안 하는데…”


아이들의 말은 짧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운함은 길고 깊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은 갈림길에 선다.

오빠의 편을 들어주자니 내가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들 앞에서 삼촌을 비난할 수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균형을 잡는 일은 늘 어렵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결국 이런 순간들 속에서 드러난다.

성인처럼 멋지고 온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몬가 억울한 것 같고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는

아직 나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눈빛, 할머니의 손길, 엄마의 웃음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완벽하게 성숙해지는 일이 아니라,

사랑과 서운함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초코렛 같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