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늦게 퇴근하는 나를 위해
내가 사는 인천까지 먼 길을 와주겠다고 했던 언니들.
하지만 수업 중에 장소가 바뀌어,
인천에 사는 다른 언니의 동네로 약속 장소가 옮겨졌다.
같은 인천이라 해도 나에게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서울에서 오는 언니들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나를 아끼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었기에,
나는 밤 10시에 퇴근 후 이동했다.
다음 날 생각해 보니 집에서 쉬다가 인천까지 와준 언니들에게 참 고마웠다.
그래서 인천에 사는 언니에게
“그 시간에 이동해 주는 게 쉽지 않은데 너무 고맙더라”라고 말했더니,
“그럼 너는 그 언니한테만 고맙고 나한테는 안 고맙다는 거니?”라는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날, 친한 오빠가 아침에 카톡을 보내왔다.
“넌 아직 어리고 예쁘니까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
나는
“오빠, 난 이제 어리진 않은 것 같아”라고 답했는데,
오빠는 갑자기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강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오빠는,
내 젊음과 예쁨을 긍정적으로 받아주길 기대했는데
내 대답이 위로를 거절하는 것처럼 느껴져 순간 힘이 빠졌다고 했다.
솔직히 두 상황 모두
이해가 안 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두 상황 모두 내 마음은 선했지만, 상대방은 다른 맥락에서 받아들인 것 같다.
언니는 비교 속에서 덜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고, 오빠는 자신의 위로가 거절당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상황과 감정 속에서 그 말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큰 오해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닿는 방식에서 생긴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는 특정한 누군가만 강조하기보다, 모두의 수고를 함께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위로를 받을 때는 상대의 마음을 먼저 받아주고, 그 뒤에 내 생각을 덧붙이면 더 따뜻하게 전달될 것이다.
즉, 관계에서 중요한 건 의도의 선함이 아니라 표현의 섬세함이다.
말은 늘 의도보다 크게 울리고, 때로는 의도와 다르게 닿는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방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실 쉽지 않다.
바쁘게 사는 삶과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대화
모든 것을 다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가끔은 입 다물고 살까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고마움을 느끼고,
때로는 오해도 겪으면서 조금씩 배우고 자란다.
관계는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이해와 성숙을 얻는다.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