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사립학교 진학을 결정했을 때,
그건
나에게 있어
단순한 교육 과정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감정의 구조를 흔드는 일이었다.
싱글맘인 내가
일을 하면서 물리적인 움직임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공부는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시는
책상 위의 문제를 넘어,
시간이 필요했다.
돈은 내가 더 일을 해서 채울 수 있었지만,
시간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마다 라이더를 해주는 일.
모의 면접에 참가해주는 일.
면접 날, 그 앞에서 기다려주는 일.
그 모든 건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때,
그가 있었다.
내가 안될 때 아이를 데려다주고,
흔들리는 나의 마음 ( 왜 면접을 준비하면서 내 마음이 더 흔들렸는지 모르겠다. )을 잡아주고
면접날 조차도 함께 동행해 주고,
내가 하지 못한 자리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채워주었다.
당신은
내 아이에게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아이의 손을 잡아준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늘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당신의 발걸음은
내가 놓친 틈을 메워주었고,
당신의 시간은
내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감싸주었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들을
당신은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한 무게를
말없이 나눠 들어주었고,
내가 놓친 자리마다
당신은 조용히 그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아이에게
당신은 부모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책임이 아닌 마음으로,
의무가 아닌 애정으로,
그 아이의
그리고
나의 불안한 시절을
당신은 품어주었습니다.
삶은 종종
우리가 직접 한 일보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해준 일로 인해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완성의 한가운데,
당신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인생의 가장 복잡한 페이지에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균형을 회복시켜 준 사람입니다.
당신의 존재는
내 아이의 성장에 있어
부모라는 이름보다 더 깊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건 존재로 남은 사랑,
기억으로 남은 온기입니다.
당신이 있어
그 시절이 견뎌졌고,
당신이 있어
나는 나를 다시 믿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