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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주헌 Apr 17. 2021

소회

저는 20대입니다. 

뒤쳐진다고 봐주는 것 없는 냉정한 사회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미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대학을 위해 공부를 하긴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치솟는 집값을 보면 당장 일을 시작해도 안될 것 같은데, 뭘 해야할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당장 일을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절실하게 일을 하고자 준비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 친구들의 고통과 노력을 모두 짓밟고 올라서야, 비로소 취직을 할 수 있습니다. 


연애? 캠퍼스 낭만?

제겐 너무나 큰 욕심같습니다.

마침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코로나라는 녀석이 어디선가 날아와 쐐기를 박아버렸습니다. 


대입을 위해 친구들과 경쟁하며 10대를 바쳤습니다.

사회는 이제 제게, 20대를 마저 바치길 요구합니다.

젊은이란게 원래 이렇게, 휘둘리듯 앗아지는 건가요? 


그런 와중에 요즘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모르는 이들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성별만으로 나를 혐오합니다.

내가 느끼는 막막함이 어느정도인지 모르는 이들이, 젊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바보라고 듣고 자랐습니다.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하고, 믿을건 나 자신뿐이라고 듣고 자랐습니다.

이 비난과 조롱을 수용하기엔 저는, 더 이상 내려놓을 자존감이 없습니다. 


저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왜 나를 욕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살아왔을 뿐입니다.

내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노력에 대한 걸맞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회라 믿으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나에게, 혐오와 조롱만이 가득한걸까요?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나요?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남자로 태어난 것이,

힘들게 버텨온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할 만큼,

그렇게 큰 잘못인가요? 


"응. 잘못이야." 


세상은 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참을 수 없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부정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갈등이 나날이 심해지는 요즘, 서로를 헐뜯으며 점차 피폐해져가는 이들의 소회가 아닐까.

같은 20대로써, 또래끼리 서로 증오하고 불신하는 이 사회가 너무 안타까웠다.


최근 유튜버 슈카월드의 영상을 하나 보았다.

제목은 "힘든 청춘들, 서로 사랑하기를 응원합니다."

평소에도 즐겨보는 이 아저씨는 시사 경제 썰을 재밌게 푸는 형인데, 갑자기 새로운 주제를 꺼내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알기 쉽게 전해주는 메신저였는데, 이번엔 직접 자기의 목소리를 냈다.


그 메시지는 2030 격렬한 남녀갈등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반성과 사과.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결코 그가 남녀갈등을 초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써 유튜브라는 채널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원래 컨셉대로 재미나게 영상을 풀어가는 와중에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미안합니다"


아무런 덧붙임 없는 한 마디.

그 한마디가 모니터로 바라만 볼 수 있는 그에게서 너무나 또렷이 전해졌다.

가슴이 먹먹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무언가 응어리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왜 낯선 유튜버의 한 마디가 이토록 큰 위로가 되는걸까.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어쩌면 그저 사소한 관심이었던 것 아니었을까.

힘들어 울고싶을 때 등을 두드려 주는 담담한 손길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까 좀 알아달라고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을테니까,

응. 노력하고 있구나. 하고 따뜻하게 지켜봐달라고


우리들의 소회는 사실은 이랬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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