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세상, 결합과 연대의 힘, 사랑

by 만주헌

세상은 99% 비어 있다. 원자의 양성자와 전자 사이의 거리는 비례해보면 지구와 달 사이보다 멀다. 그러한 원자들이 우리 몸, 강과 산, 지구 그 모든 것들을 구성하고 있다. 거시세계에서도 똑같다. 칠흑같은 우주에서 천체와 천체 사이의 거리는 아득히 멀다. 어느정도냐면 우주 공간의 밀도는 너무나 낮아서, 우주선의 궤도를 정할 때 충돌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서로 아득히 멀고 비어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가?


떨어진 것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묶여 있다. 원자의 + 양성자와 - 전자는 서로의 끌어당기면서 그 먼 거리를 유지하며 붙어있다. 그 힘이 워낙 강해, 정말 완강한 외압이 아닌 다른 무엇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 우리의 몸도 지구도, 우주도, 서로를 결합시키는 강한 힘과 연대를 통해 비어있는 공간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작용의 정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한다면 그들은 어떤 외압이 들어와도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그들은 결코 쉽사리 깨어지지 않으며, 고통스런 시련을 겪을지 언정 다시 돌아온다.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지구 정 반대편에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한동안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계속 사랑하고 매일같이 서로를 생각하며 잠들다보면 그들은 결국 재회할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불교에서 부처는 오온이 공하다고 한다. “모든 것은 비어있다”라는 뜻이다. 입자로 이루어진 세상의 구성 원리와 비슷해 보인다. 더 나아가, 불교에서는 “텅 빈 것”에 대한 고찰을 이어간다. 불교의 유명 구절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꽉 찬 것은 텅 빈 것이고, 텅 빈 것은 꽉찬 것”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보기에 단단하고 꽉 찬 것 같은 물질들도 사실은 텅 비어 있으며, 텅 비어있는 것들도 사실은 꽉 찬 것과 같은 무언의 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꽉 찼는지 텅 비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기독교에서 예수는 오직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거라 말한다. 텅 빈 세상이지만 사랑으로 꽉 찬 세상은 구원받을 수 있다. 예수는 십자가라는 상징과 성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류사에 사랑의 가치를 가장 광범위하게 전파한 존재이다. 비어있는 세상이 서로 연대될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인 보편가치를 인류에게 알린 것이다. 그러한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간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더욱 차갑고 폭력적인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비어있는 세상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숙명이라 생각한다. 자본, 쾌락, 물질, 폭력과 같은 유혹적인 욕망들을 이겨내고 사랑으로 향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기에 더욱 숭고한 숙명이라 생각한다. 절대 깨어지지 않도록 끈끈히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신은 인간이 그리 살아가도록 숙제를 내어주기 위해 세상을 비어있게 만든 게 아닐까.


외롭고 고독하고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이더라도, 서로 사랑한다면 그 거리를 메꿀 수 있다. 아무리 끊으려해도 끊을 수 없는 입자들처럼, 서로 단단히 붙어 칼로도 벨 수 없는 물처럼.


세상은 99% 비어 있다. 그 비어 있는 99%를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것을 잊지 말자. 결합과 연대의 힘, 사랑.


그림.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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