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깊이도, 학문적 깊이도 없는 나와 도달할 수 없는 그들의 이상
누군가가 참을 수 없게 부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들의 '깊이'를 동경할 때이다. 그들이라고 절대 쇼팽의 에뛰드 25 - 12번을 흥얼거리며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학문의 자유에 대한 투쟁의 글을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 일기장에 적어 제출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나의 주먹구구식 글 읽기와 일기 쓰기로는 다다를 수 없는 깊이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을 찾아 읽을 때마다,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것이 느껴진다. 나는 창의적이지도, 학구적이지도 않기에 그렇다.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님이 또 다른 좋아하는 작가님을 이른바 '샤라웃'한 것을 보았다. 나는 두 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모두 팔로우 중이기에 당연히 두 분 모두의 스토리에서 그 장면을 보았고,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간극을 또 한 번 느꼈다. MBTI의 세 번째 글자가 N인 나답게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와중에 그들의 샤라웃이 떠올랐고, 나는 과연 그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떠올려 보았다. "저 작가님 작품 정말 좋아해요!", "사진을 어쩜 그렇게 찍으세요?"... 바보 같은 말만 떠올랐다. 언제 어떻게 그들을 만날지 모르니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글을 하나씩 정리해 놓으면 도움이 될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내 글을 보고는 "정말 표면적인 감상이네요"라는 답이 돌아오면 어쩌지? 그들의 작품을 향한 내 애정이 얄팍하게 보이면 어쩌지? 별 생각을 다 하다가 결국 풀이 죽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에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다녀왔다. 역시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한 연구자님의 출판물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예상치 못했지만 그 부스엔 내가 존경하는 연구자님이 계셨고, 신난 나는 "저 사실 이 출판물 구매하려고 여기까지 3시간 걸려서 왔어요. 추천해 주시는 책들도 덕분에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비슷한 이유로 그 말을 삼켰다. 나는 연구자님이 올려주시는 책들이 속한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분야에 대해 나의 생각을 표현할 만큼의 깊이를 가지지 못했으며, 만약 내가 그럴만한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면 대학 시절 나에게 작은 변화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스스로가 학부 수업을 열심히 듣는 일반적인 학생의 수준임을, 그런 나를 연구자의 길로 이끌기엔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음을 선명히 알고 있었기에 학문 연구자의 길은 포기했었다. 이런 내가 설레발처럼 말을 건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름대로 깊이를 채우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이들은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글을 쓸지 생각해 본다. 스스로의 방식으로 그들의 작품을 분석하는 글을 써보기도 한다. 나만의 글을 창작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기 위해 브런치에 (내 기준으로는) 너무 길지 않은 주기로 글을 쓴다. 새로운 input의 중요성 역시 잘 알고 있기에 많은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시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가진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는 것일까?
사주를 본 적이 있다. '글선비'같은 존재인 나는 평생 공부를 할 것이라 했다. 어쩌면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몇 년이 지나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보고, 지식과 영감에 목말라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일까? 좋아하는 작가님들 앞에서 얼어붙고, 존경하는 연구자님께 말 한마디 걸지 못하는 이 모습은 변화할 수 없는 것일까.
스스로가 조금 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부족한 예술 영혼이, 학문적 탐구 경험이 그들에 미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나의 좋아하는 마음을 가리우지는 않았으면 하고 소망한다.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이지 않겠는가. 나와 다른 층위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와 그들 사이에 벽을 세우지는 않는다고 믿어보려 한다. 내가 그들과 한마디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한 발자국 나아감에 보탬이 될 수 있고, 어쩌면 그들에게도 그들을 애정하는 내 존재가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얼굴에 철판이라도 써보려 한다. 준비가 되지 않아도 부딪혀보고 또 깨지는 그 발걸음을 내디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