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2010
90년대 시민운동
90년대, 정치, 경제 영역에서 나타난 주요 변화들은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심화시켰다. 정치영역에서는 직선제 개헌으로 정치적 자유가 회복되고, 정치 참여의 기회가 확대되었으며, 경제영역에서는 국가 주도 성장 패러다임 속에서 성장한 재벌 기업들이 경제성장을 가속화했다. 이 같은 변화는 민주화로 대표되는 80년대의 단일한 가치지향을 공정성, 투명성, 형평성, 생태적 감수성 등으로 다양화했고, 부동산, 교통, 환경,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분쟁, 장애인 문제 등을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켰다 (하승창, 2015). 사회를 재정의하는 가치와 문화, 의제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그에 걸맞은 사회운동이 요구되었다.
90년대의 시민운동은 민주화로 대표되는 거대담론을 전면에 내걸었던 80년대 사회운동과 달리 시민의 일상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을 정책이라는 제도화된 도구로 해결하고자 했다. 시민단체는 변화한 사회적 요구에 조응하는 대안들을 제시하며 시민운동을 사회운동의 주류로 자리매김시켰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운동이 주목하는 대상도 변화했다. 80년대의 민중운동이 ‘계급’에 주목했다면 90년대의 시민운동은 ‘시민’을 사회운동의 주체로 호명하며 그것이 대표하는 대상의 범위를 확대했다 (홍일표, 2017).
90년대 시민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시민단체로는 경실련과 참여연대, 여성민우회, 환경운동연합, YWCA 등이 있다. 이들은 운동 방식의 합법성을 강조하며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시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의제들을 다루면서 시민들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대변했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역할은 민주화 이후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는 생활정치로의 관심이 증가하고 (하승창, 2015) 인권, 환경, 젠더 등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개혁 요구에 부응하며 사회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왔다. 경실련의 금융실명제와 주택임대차보호법,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과 소액 주주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사례를 통해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시사저널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실련, 군보다 세다>에서 민주화 이후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추가 군에서 시민단체로 이동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시민단체가 사회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사회적 변화를 읽고 시민들의 요구에 조응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 주요했다.
90년대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16대 총선에서 전개된 낙천낙선운동을 기점으로 정점에 올랐다. 낙천낙선운동은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총선시민연대가 중심이 되어 반인권, 비리 전력을 가진 부적격 후보자를 발표한 정치개혁 운동이다. 전개 과정에서 운동방식에 대한 시민단체 간 이견이 있었지만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진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며 낙선 대상자 86명 중 59명을 낙선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정치권을 감시하고 압박하던 시민단체는 정치영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낙천낙선운동을 계기로 시민단체들에 우호적이던 정치권과 언론은 영향력이 커진 시민운동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시민사회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은 낙천낙선운동 이후 언론 관련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언론개혁이 의제화되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하였다. 시민단체들은 위기의식을 느낀 언론과 정치권의 견제,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시민운동계 내부의 분화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시민운동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시기는 2000년대 중반이지만, 시민운동계 안팎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한겨레는 1996년 <시민 없는 시민운동> 연재를 통해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사라지고, 대중보다는 언론을 의식하며, 감시의 대상인 국회에 진출을 꾀하는 시민단체들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희송, 2006).
자발적 시민과 대안적 시민운동
2000년대 초반,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이 등장했다. 이 운동의 흐름은 새로운 유형의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이고 엄숙함 대신 축제와 놀이의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들이었다 (김은지, 2017). 이 ‘자발적 시민’들은 2000년대 초반 효순 미선 양 추모 촛불집회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민은 90년대 시민단체에 의해 사회운동의 주체로 호명되었지만, 전문가 집단이 중심이 되어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운동방식 안에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자발적 시민의 등장으로 시민은 동원의 대상이 아닌 사회운동의 주체로 부상하였다.
자발적 시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지던 2000년대 중반, 시민운동계에서는 응축되었던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으로 과거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대변되었다. 더불어 정당법·정치자금법 등의 개정으로 준정당적 기능을 수행해온 시민단체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있었다 (김은지, 2017).
시민운동의 위기론이 공론화되는 가운데 박원순 전 시장은 비판과 성토의 대상이었던 국회와 정당, 언론 등이 시민단체의 경쟁자로 등장했다면서, 시민운동은 이러한 경쟁에서 ‘잘 팔린’ 의제를 고수했을 뿐 새로운 의제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지적했다 (강이현, 김경락, 2006). 또한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90년대 시민운동이 추구해온 중앙집권적인 운동방식을 비판하며 대중적 지지기반이 취약해진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은지, 2017).
이들은 ‘자발적 시민’에 주목하며,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에 조응하고 시민의 필요에 부합한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전문 운동가가 아닌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으로, 중앙 조직이 아닌 분산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시민들을 일방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아닌 연결하는 운동으로, 인권, 여성, 다문화, 평화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는 운동으로 변화해야 함을 제안했다 (김은지, 2017).
2000년대 초반까지 시민운동의 축이었던 90년대 시민운동에 더해 시민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흐름이 등장하였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던 사회운동의 흐름이 다변화된 데에는 자발성에 기초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전통적인 시민운동에 균열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민운동의 방향성을 견인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시민들을 동원하고 전문 운동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인권, 여성, 탈핵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는 대안적인 시민운동의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시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시류에 적응하는 기민함과 초정파적 중립성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접근은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희망제작소를 통해 구현되었다.
희망제작소와 사회혁신의 등장
희망제작소는 현장으로부터 다양한 의제를 발견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싱크탱크로 2006년에 설립되었다. 특징적인 점은 희망제작소가 연구기관의 정체성과 함께 시민운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표방했다는 것이다. 박원순 전 시장은 희망제작소의 설립을 두고 ‘희망제작소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운동이다’ (안수찬, 2006)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희망제작소는 정책 의제의 개발과 대안 생산이라는 통상적인 싱크탱크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구체적인 접근법에 있어서는 차별성을 보였다. 현장을 중시하거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싱크탱크로서 희망제작소가 갖는 고유한 특징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박원순 전 시장이 제시한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성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믿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시민의 지혜’를 강조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참여연대의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와 구별되는 것으로 시민들이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방식을 ‘아이디어’로 구체화해 제시하고 있다 (박원순, 지승호, 2006). 여기서의 아이디어는 이데올로기적인 담론이라기보다 일상으로부터 얻어지는 경험적 지식을 의미하는데,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운동을 추구하며 운동의 일상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박원순 전 시장은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비해 시민들의 삶 속으로 다가가는 운동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박원순, 지승호, 2006).
희망제작소는 사회창안(Social Innovation)을 전면에 내세우며 사실상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희망제작소의 사회창안센터는 사회창안대회 등을 통해 시민들의 공익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제도화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인 사회창안센터의 활동은 사회변화를 만들기 위한 일상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법을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위한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넓혔다. 희망제작소를 통해 제안된 새로운 참여의 방식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운동 중심 접근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희망제작소는 전통적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에 더해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또 다른 참여의 방식을 제공했다.
2009년 희망제작소의 6개 센터 가운데 하나인 사회창안센터는 사회혁신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사회혁신 기업가 아카데미 등 사회혁신을 키워드로 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2011년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사회혁신의 개념 아래 살펴보고 이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한국 사회혁신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 (희망제작소, 2012). 이 연구는 사회혁신에 대한 해외의 정의들을 검토하고 사회혁신의 특징들을 밝혀내었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에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을 견인한 시민들은 희망제작소와 사회혁신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 희망제작소의 사회혁신은 새로운 시민들의 요구와 감수성에 조응하며 시민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시도를 이어갔다.
에필로그
작년 가을, 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사회혁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사회혁신이란 단어가 아직은 어색하던 때였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회혁신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사회혁신이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전개되는 과정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사회혁신의 흐름을 정리해보는 이 프로젝트가 구상되었다. 사실 사회혁신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혁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작업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준 동료들의 격려가 있어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틈틈이 레퍼런스를 찾아보며 내용을 정리해나갔다.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사회혁신의 전개 과정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90년대 시민운동부터 사회혁신이 등장하기까지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며 특히 사회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시민들의 추동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회혁신이 등장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전통적인 시민운동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회운동의 흐름을 바꿔놓은 시민들이 사회혁신의 등장에도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사회혁신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발견이었다.
이번 작업에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회혁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흐름들을 두루 담아내지 못한 점이다.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다른 글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이번 글을 계기로 사회혁신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공유되는 공동학습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강이현 김경락(2006.10). “시민운동은 여전히 블루오션”.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719#0DKU
김은지 (2017.2). ‘혁신적 시민성’의 의미형성과 제도화 — ‘희망제작소’와 ‘서울혁신파크’를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 대학원.
김희송 (2006). 시민운동 비판의 이데올로기 요소 고찰: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을 중심으로. NGO연구, 4(1).
박원순 지승호 (2006). 희망을 심다. 알마.
안수찬 (2006.1). 희망제작소 3월 닻올린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PRINT/96734.html
하승창 (2015.3). 나의 시민운동 이야기. 휴머니스트.
홍일표 (2017.1). 한국 시민운동과 ‘촛불시민’ ‘현상유지적 병존’ 아닌 ‘상호진화적 공존’의 길로 나아가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s://www.kdemo.or.kr/blog/610/post/1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