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마침표라는 걸 찍어야지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것이 과연 선택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선뜻 답할 수 없을 거예요. 어떤 일은 정규직 자리가 아예 없거나, 너무 적어서 필연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2호에서는 노동의 형태로 프리랜서를 선택한 것이 아닌 하고자 하는 일을 하다 보니 프리랜서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ditor’s letter
시작은 이랬다. 지인 프리랜서와 제주의 예술 공간 ‘이아’ 전시를 관람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정규직 삽화가, 정규직 소설가, 정규직 만화가 이런 단어의 조합은 참 어색해. 정규직과 창작하는 직업을 연결하면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 되네.”
한창 <프리낫프리> 2호에 대해 고민하던 참이었다. <프리낫프리>의 주제를 고민하는 일은 다양한 계층에 분포된 프리랜서의 삶을 나노 단위로 쪼개 보는 과정이다. 프리랜서의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그날의 전시와 나무 그늘에서 나누었던 대화로 내가 깨달은 건 세상에 ‘정규직’이라는 선택지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너무 협소한 범위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덜컥 정규직으로 포섭되지 못한 ‘창작’ 계열의 프리랜서를 <프리낫프리> 2호에 담아보자고 결정해버렸다. 그 결정이 후회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리랜서라는 개념도 모호한데, 창작이라는 개념 역시 이토록 모호하다. 게다가 나름대로 창작자의 주변을 배회하는 기획자라지만, 글과 그림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하곤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미개척지나 마찬가지였다. 주제를 되돌리려고 해도 이미 무턱대고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청탁해둔 터였다. 몇 번이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이토록 어려운 개념을 담아내려 하다니, 나라는 인간.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없으니 일단 사람을 만났다. 글을 창작하는 사람,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 그림을 창작하는 사람, 영상을 창작하는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어떤지.
창작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열네 명의 창작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으로 쓴 문장 더미 일부에는 단어 대신 밑줄이 있었다. 그 밑줄을 채우는 질문이었다.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나댑시다’를 외치며 강제 마감 장치를 만들어 매일 마감하는 창작자, 이다(2da) 작가를 만나 창작하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봤다. 사십대에 창작하는 프리랜서로 삶을 다시 시작한 도대체 작가와도 만났다. 그와는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창작자로서 느끼는 인생의 긍정과 부정의 순간들을 공유했다.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는 프리랜서이자 영화감독 지망생 이용명 작가는 ‘창작하는 프리랜서’라는 주제로 꼭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연락을 주었다. 곧 그는 영화 지망생들을 인터뷰한 책 《생산적인 비생산의 시간》의 저자 김보라와 열두 팀의 유튜버를 만나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담아낸 《유튜버의 일》의 저자 이수진을 인터뷰했다.
작업실 공유에서 시작해 창작 문화 매거진 <비생산>을 만든 창작팀을 만나서는 창작하는 프리랜서로의 삶, 그리고 함께 무언가 만드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리낫프리>와 깊은 연을 가졌으며, 글쓰기로 밥벌이하는 프로딴짓러 박초롱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프리낫프리> 창간호의 인터뷰이이자 《대리사회》, 《훈의 시대》, 《경계인의 시선》의 저자 김민섭은 글 쓰는 전업 프리랜서가 살아가는 방식을 소개한다.
창작하는 프리랜서에게 들었던 고민 중의 고민, 계약서와 저작권에 대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계약서의 구성을 뜯어보며 쉬운 언어로 풀어보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승연의 정일호 변호사에게는 계약에서 주의할 점과 계약 관련 문제 발생 시 대처법을, 아트로 김유나 변호사에게는 저작권 계약 시 유의할 점을 물었다.
‘창작하는 프리랜서’라는 주제와 별개로 이번 호에서도 프리랜서의 말말말을 충실히 담아냈다. <나이이즘>의 박의나 에디터는 게으른 1인 가구 프리랜서가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공유한다. 오늘의 작업실에서는 제주 종달리에 열린 ‘느린 글쓰기 작업실’의 주인장이자 글 쓰는 프리랜서 배주희 작가가 글 쓰는 공간에서 글 쓰는 사람들을 관찰해 글로 엮어냈다. 《어떤 여행》, <어떤 시집>의 공가희 작가는 프리랜서의 어떤 하루를 소개한다. ‘싫은 소리’의 이모양 작가는 프리랜서의 싫은 소리를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환상’이라는 제목의 글에 디지털 노마드로 일한 경험을 담은 독자 기고도 실었다. 제주에 사는 작가 부부인 주도와 안나는 프리랜서의 삶을 짧은 네컷 만화로 위트 넘치게 소개했다.
프리랜서 꿈나무가 프리랜서에게 질문하고, 프리랜서가 그 질문에 답한 코너도 있다. 직장인 관점에서 프리랜서에게 던진 질문이 사뭇 신선했다. 고정 코너인 프리랜서 심리 상담소에서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연을 다뤘다. 프리랜서 네트워크 정재석 대표는 프리랜서의 권익 보호를 위해 우선 해결되어야 하는 점이 무엇인지 말한다.
열 네명의 창작하는 프리랜서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는 ‘언제 마침표를 찍느냐’였다. 창작물을 대중에게 공개하려면 어떤 시점에서는 굳건히 마음을 먹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질문이 시작됐다. 다른 창작자에게는 꾸준히 마침표를 찍고 다시 시작해야 꾸준히 창작할 수 있다고 설파하면서도, 정작 내 일이 되니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프리낫프리> 2호도 그렇게 기사가 더해지고 고민이 더해지며 마침표를 찍지 못할 지경까지 갔다.
역시나, 창작하는 프리랜서라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를 잡은 것이 문제였다. 이 지면에서라도 주제 탓을 좀 해야겠다. 막상 마침표를 찍으려니 창작하는 프리랜서라는 포괄적인 주제에서 다뤄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아직 플랫폼 노동까지 가지도 못했다. 창작의 사회적 가치와 권리를 강조하지도 못했다. 그저 내가 닿을 수 있는 창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파편으로 모았을 뿐이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침표를 찍어야 그다음 층위로 깊게 넓게 뻗어 나갈 수 있겠다고. 그래서 <프리낫프리> 2호 ‘창작하는 프리랜서’는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어 보려고 한다. 아니, <프리낫프리> 2호 ‘창작하는 프리랜서 Part 1’으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야겠다.
다음 호, 그다음 호에도 창작자의 이야기는 기획 인터뷰에서, 칼럼에서, 프리랜서 노동권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에서, 그리고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이야기에서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프리낫프리> 2호 ‘창작하는 프리랜서 Part 1’은 어쩌면 창작하는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계속 수면 위로 올려 보겠다는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Feature 1] 창작하는 프리랜서 14인의 밑줄 인터뷰
1) 나는 ____을 창작하는 프리랜서다.
2) 프리랜서로 나는 _______로 먹고 산다.
3) 창작 외에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독특했던 외주는 ____이다.
4) 나의 현재 관심사는 ______이다.
5) 창작자로서 나의 고민은 _____ 이다.
6) 내 창작의 힘은 ____ 이다.
7)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_____ 이다.
8)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___ 만 원을 받고 싶다.
9) 창작하는 프리랜서에게 가장 필요한 제도는 _____ 이다.
10) 내가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이유는 ____ 이다.
11) 내가 상상하는 10년 후 모습은 _____ 이다.
[Feature 2] 창작 프리랜서의 느슨한 연대, 공간 비생산, 매거진 비생산
[Interview] 창작자여 야망을 가집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2da’ 작가 인터뷰
[Series] 출발선에 서 있는 창작자들을 위해 - 이용명 영상디렉터의 인터뷰 시리즈
인터뷰 1.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김보라 작가
인터뷰 2. 〈유튜버의 일〉이수진 작가
[Special : 창작하는 프리랜서를 위한 계약서 가이드]
가이드 1. 계약서의 구성 내용 소개
가이드 2. 외주 용역 계약 시 유의할 점 \ 정일호 변호사
가이드 3. 저작권 계약 시 유의할 점 \ 김유나 변호사
[Essay] 작가란 무엇인가 / 박초롱
[책갈피] ‘그래도, 프리랜서’ 창작하는 프리랜서 모임에서 뽑아낸 창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쪽글
1.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2. 동상이몽
3. 창작자의 오리지널리티
4. 트렌드를 따라간다는 것
5. 노동과 개인 창작을 병행하는 것
6. 창작이 아닌 것으로 먹고 살기
7. 창작자로서 성공한다는 건 뭘까요?
8.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긍정성
-
[오늘의 작업실 : 느리게 글쓰기 공간 필기 Pilgi ]
글 쓰는 공간에서 글 쓰는 사람을 바라보며 / 배주희
[ 프리랜서의 삶과 노동 ]
일과 삶과 취미의 합치 - 김민섭 (대리사회/훈의시대 저자, 출판사 정미소 대표)
딱딱하지만 필요한 글 - 정재석 프리랜서 네트워크 대표
[지속 가능한 프리랜싱을 위하여]
Column. 프리랜서 심리상담소 - 거절을 못 하는 ‘호구 준비생’의 사연
Interview.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도대체 작가 인터뷰
Essay. 어느 게으른 1인 가구 프리랜서의 루틴 분투기 / 박의나(매거진 나이이즘 편집장)
[Q&A]
프리랜서 꿈나무가 묻고 6년 차 프리랜서가 답하다. / 료나, 이다혜
[Essay]
프리랜서 여성 연대가 필요한 이유 / 박초롱
디지털 노마드라는 환상 / 사과집
프리랜서의 ‘싫은소리’ - 이모양
어떤 하루 / 공가희 작가
[Cartoon]
프리랜서의 퇴근 / Zudo & Anna
자꾸만 일을 만든다 / Zudo & Anna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 2호 펀딩은 아래 링크에서 후원 가능합니다.
만드는 사람들
- 발행 : 이다혜
- 편집 : 이다혜
- 교정/교열 : Editor River
- 표지 디자인 : 민호씨
- 내지 디자인 : 이다혜
- 일러스트 : Zudo, Manman, 이모양
- 스티커 디자인 : 이모양
- 법률 자문 : 정일호 변호사, 김유나 변호사
- 디자인 자문 : 민호씨, Zu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