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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Apr 17. 2020

계속 쓰는 것밖에 답이 없다.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워진 글 쓰는 프리랜서의 이상한 글

몇 개월째 글 쓰는 게 너무 힘든 상태라 이번 주 글 마감을 면피권을 써서(네. 제가 하는 브런치 글 발행 모임에 연 3회 면피권이 생겼어요.)넘겨 보려 했는데, 문득 뭐라도 써서 올려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냥 생각의 조각들을 성기게 심은 짧은 글을 공유합니다.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단어를 고르는 것도, 고른 단어를 문장으로 이어 붙이는 것도 그렇게 이어 붙인 문장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써보려고 글쓰기 앱을 켜 멍하니 빈 곳을 응시한다. 파편화된 단어를 무심하게 채운다. 사유는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예상치 못했던 결론으로 치닫는다. 


삶은 당면으로 뜨개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물렁물렁하고 잘 끊어지는 삶은 당면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견고하고 탄탄하게 직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 사유와 글은 그렇게 물러 터진 채로 길을 잃고 파편으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쓰는 일로 벌어 먹고살고, 쓰는 일로 마음을 정리하며 쓰는 일로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재능도 없는 글쓰기를 시작했고, 겨우 돈을 벌고 있다. 그런데 쓰는 일이 되지 않으니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글쓰기를 연마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내가 가진 소명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연장을 잃은 목수처럼 거칠고 투박한 나무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개인의 괴로움으로 그치는 문제라면 기다릴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내 밥줄이 걸린 문제였다. 당장 외주 기사를 써야 하고, 매주 글을 올려 나는 쓰는 사람이라고 증명해야 한다.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나는 산만하게 단어를 흩뿌리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쓰는 사람으로 적합하지 않았는데 괜히 호기를 부려 여기까지 왔고, 여기까지가 내가 가진 쓰는 능력이 발현된 끝점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직업을 또 바꿀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기억까지 끄집어와 기어이 낮은 글 자존감을 되새김질했다. 한 번도 글쓰기로 상을 타본 적이 없다는 것. 공대에 입학해 글쓰기와 담쌓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 (공대에서도 쓴다. 쓰지만…) 첫 회사에서 너는 글보다는 다른 길이 맞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한 번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직면했다. 


문득, 어제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얼마나 써봤는데? 뒤처진 시간의 밀도만큼 무언가를 절실하게 써 내려 간 적 있어? 얼렁뚱땅 적당히 구색을 갖춘 글을 내뱉으며 욕먹지 않고 먹고산 것에 자위하고 있던 것 아냐? 뭘, 얼마나, 썼어? 


계속 쓰는 것밖에 답이 없다. 파편화된 단어를 긁어모아 삐뚤빼뚤 연결해 뭐라도 계속 만드는 수밖에 없다. 튀어나온 단어를 쓱싹 사포질하고 부족한 사유를 덧칠해서 계속해서 내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 그렇게 계속 쓰면 적어도 쉽게 멈췄다는 후회의 덫에 빠지지는 않겠지. 적어도 계속 쓴다면 명품은 아니더라도 빈티지라도 되겠지. 세월의 더께만으로도 충분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무언가는 나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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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입니다. 매거진 <딴짓> 박초롱과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이다혜가 공동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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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annah gra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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