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혜를 가진 모든 사람이 깨달은 한 가지 진리가 있다.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솔로몬,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위버맨쉬 프리드리히 니체까지 모두가 입을 모아 전하는 단 한 가지 진리는 바로,
"인생은 헛되다"라는 것이다.
솔로몬에 대한 일화는 흔히 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갓난아이를 가지고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이 나타났다. 솔로몬은 신하에게 아이를 반으로 잘라 두 여인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그때 한 여인은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돌려받아야겠다고 주장했고, 한쪽은 차라리 저 여인에게 아이를 주라고 애원했다. 솔로몬은 아이를 포기한 후자의 여인이 아이의 진짜 엄마라고 (만약 진짜 엄마가 아니라 하더라도 반쪽짜리 아이라도 받겠다는 정신 나간 여인보다는 이쪽이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판결했다.
성경 속 전도서라는 책은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적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도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심지어 자신의 지혜마저도 헛되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얼마나 큰 지혜를 가지고 있든 간에 결국엔 죽고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이렇게 잘 다스렸지만 자신의 후계자가 지혜로운 자인지 어리석은 자인지 알 수 없으니 이마저도 헛되다며 한탄한다.
솔로몬뿐만 아니다. 철인황제로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인간이 사는 것은 한순간이며 육신의 모든 것도 강처럼 흘러가고 혼의 모든 것은 꿈이요, 연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제는 흙먼지가 되어버린 과거의 위대한 황제들을 떠올린다. 대부분은 이 세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소멸해 버렸다. 또한 일생의 대부분을 국경지대에서 이민족과의 전쟁을 하며 지내온 그는 인생의 부질없음을 느꼈을 것이다. 혼자 걸어 다니지도, 생각하지도,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철조각에 수십 년을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초인, 위버맨쉬, 광기의 철학자, 현대 인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의 부질없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신은 죽었다
유럽의 도덕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도교는 과학주의와 이성주의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종교인들에게는 죽음은 허무한 종말이 아니다. 악인은 심판받고 의인은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물질주의 세계관이 도래하고 이 모든 것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사후 심판이 없다면 지상에서의 나의 고통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죽음도 그저 죽음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인생은 헛되다"라는 진리는 참인 것 같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입모아 이야기하니 어쩌겠는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가 이토록 염세주의적인 명제란 말인가.
왜 저들은 "인생은 헛되다"라는 지혜를 널리 퍼뜨리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이 명제를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솔로몬, 아우렐리우스, 니체 언듯 보면 이들에게 공통점은 딱히 없어 보인다. 시대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각각 유대교, 로마 다신교, 무신론자), 가지고 있는 철학도 다르다 (각각 유대교, 스토아, 허무주의). 하지만 그들이 "인생은 헛되다"라는 진리에서 찾아낸 교훈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다.
솔로몬은 결국 모든 것은 헛되니 신을 경외하고 선을 행하라고 조언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성경 교훈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왠지 성경에는 안 적힐 것만 같은 교훈들도 잇따라 등장한다. 솔로몬은 인생을 즐기라고 한다.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청년들에게는 청춘을 즐기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보고 싶은 것도 보라고 조언한다. 다만 나중에 신이 모든 것을 심판할 테니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한다.
아우렐리우스도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신들에게 헌신하고 선을 행하라고 조언한다 (다만 유대교의 야훼가 아닌 로마 다신교의 신들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답게 쾌락을 멀리하고 이성을 키우라고 조언하지만, 이러한 문장도 등장한다.
네 몫으로 주어진 것들에 적응하고 운명으로 엮어진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는 인생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주어진 것들에 최대한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조언한다. 명상록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데 바로 운명에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운명에 최대한 적응하고 사랑하라고 조언한다.
자, 니체는 어떠한가. 니체는 자신의 영원회기 사상의 결론으로 아모르파티를 이야기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더하여 니체는 자신이 직접 초인이 되어 도덕과 윤리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라고 조언하다. 많은 사람들이 니체의 초인(위버맨쉬)라고 하면 모든 도덕을 없애버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해버리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초인사상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신이 직접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지 도덕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다.
"도덕은 그냥 지키는 거야" "처벌받기 싫으면 지키는 거야"라는 이유로 도덕을 지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왜 도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여 지켜야 하는 도덕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여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 니체의 초인철학이다.
그럼 이제 위 세명의 현자가 말하는 "인생은 헛되다"라는 명제 속 숨어있는 진정한 지혜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 세상 뜨기 전에 이 세상을 충분히 즐기라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보고,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헛된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단,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신이 기뻐하는 선에서 말이다. 또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면서 말이다.
꽃은 금방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구경을 위해 먼 여행을 떠난다. 금방 사라지는 곳에 열정이 머문다. 인생이 헛되지 않다면 우리는 인생에 열정을 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인생이 헛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주어진 순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졌다. 여러 번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열정, 최선, 사랑이 결국 "선을 행하며 인생을 즐겨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교훈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인류 최대의 지혜이다.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