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의 척도

우리 내면에 위대함의 척도를 세워라

by 이다이구

우리 내면에 위대함의 척도를 세워라

Calibrate our internal meter for greatness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의 저서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의 문장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팁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열 번째 팁인 Submerge: The great works (잠수: 위대한 작품)에서 릭 루빈은 우리에게 위대한 작품을 체험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작품에 특정한 분야는 정해져 있지 않다. 문학, 영화, 음악, 그림, 음식, 건축물 등 어느 것이든 자신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모든 작품을 포함한다. 단, "위대하다"라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걸작 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위대한 걸작을 모방하기 위해서?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무엇이 위대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아니, 일부러 허술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하더라도 일단 "위대한 작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작품이 허술한지 위대한지 판단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문학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더 멋진 문학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위대한 문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위대한 글은 정갈할 수도 난잡할 수도, 가독성이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이해하기 쉬울 수도 난해할 수도, 직설적일 수도 은유적일 수도 있다. 위대한 글을 정의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요소를 가진 문학 작품이 위대한 문학작품이다"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물론 학교에서는 특정한 방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지만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위대한 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위대한 문학을 직접 체험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왜 위대한 글인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왜 위대한 글인지, 이상의 <날개>가 왜 위대한 글인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전술했듯이 위대함이라는 기준은 체크리스트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직감에 새겨 넣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위대함의 척도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드디어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위대함에 가까운지 혹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내면에 위대함의 척도를 세워라

Calibrate our internal meter for greatness


이것은 <거인의 문장> 시리즈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우리는 거인들의 조언, 생각, 철학을 듣는다. 어느 것은 실질적인 조언을 주기도 하지만, 어느 것은 별 도움이 안 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대하다 평가받은 이들의 머릿속을 계속 들여다보고 그들의 감각에, 그들의 직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위대함의 기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건축물과 현대의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건축물을 비교해 보아라. 서양의 궁전과 동양의 궁전을 비교해 보아라. 위대함의 기준은 늘 변화한다. 오래전 위대하다 칭송받은 철학이 현대에서는 얼마나 무시받는지도 보아라.


위대한 문학작품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죄와 벌>과 똑같은 작품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그때의 위대함의 기준과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 것이 나쁘고 지금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완벽함의 기준은 진보하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위대한 작품이 위대하다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겉모습이 아닌 그 안에 형언할 수 없는 위대성을 우리 감각과 영혼에 새겨 넣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작품이 <죄와 벌>의 위대함로부터 10 만큼 떨어져 있다면,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러스너호르 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로부터도 10 만큼 떨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세워야 할 척도는 한 걸작의 형태, 스타일, 포맷이 아니라 그 걸작의 "위대함"임을 헷갈리지 말자.


우리 내면에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걸작의 형태, 스타일, 포맷이 된다면 모방이지만, 그 기준이 위대함이 된다면 그때부터 창조의 시작이다.


우리 내면에 위대함의 척도를 세워라

Calibrate our internal meter for grea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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