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고독 속에서 평가합니다. 이는 좋지도,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작가는 혼자 작업하고, 고독 속에서 평가받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고독 속에서 평가합니다. 이는 좋지도,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Voyez- vous, un écrivain travaille solitairement, est jugé dans la solitude, surtout se juge lui-même dans la solitude. C e n’est pas bon, ce n’est pas sain.
37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의 문장이다.
대학교에서 Professional Writing 수업을 들을 때, 매 첫 주마다 하는 행위가 있다. 어떤 교수던 어떤 수업이던 상관없다. 소설, 에세이, 저널, 리포트, 심지어 팟캐스트 대본을 쓰는 수업까지도 마찬가지다. 바로 Editing Group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이 그룹에서 학생 4-5명이 매주 모여 서로 쓴 글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보이지 않았던 글의 단점 그리고 무엇보다 장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글을 보며 스스로 피드백을 내릴 때 하는 생각은 보통 무엇인가. 대게 "이 글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내지 "이 글이 어떻게 하면 더 발전될 수 있을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장점은 무엇일까?" 하고는 스스로 잘 묻지 못한다. 먼저 자화자찬하며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는 것이 낯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늘 스스로 곱씹는 한 문장이 있다. 그것은 "나의 가장 좋은 점은 나만 모르고, 나의 가장 안 좋은 점은 나만 안다."이다. 과연 그렇다. 나의 장점은 내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가장 안 좋은 부분, 가장 추악한 부분은 오직 나만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고독 속에서 평가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 안에서 오가는 피드백은 편향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점이라는 것은 내 입으로 말했을 때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한다. 백날천날 스스로 "나는 운동을 잘해"라고 이야기한다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장점이 되지 않는다. 장점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너는 운동을 잘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운동은 나의 장점이 되는 것이다.
장점과 인정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서로 떼어놓을 수가 없는 법이다. 세상 누구도 나의 장점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장점이 될 수 없다.
이건 단순히 글쓰기에서만 통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고독 속에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피드백은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그 한계가 명확하다. 단조롭고,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주 편향되어 있다.
Editing Group 없이 나 스스로 피드백을 내릴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먼저 내 글의 장점이고 단점이고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시작한다.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다음은 내가 쓰려는 글과 비슷한 주제 혹은 장르의 글들을 찾아본다. 찾아본 글과 내 글을 비교하고 내 글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된다. 내 글에 억지로 다른 사람의 스타일과 기법을 적용시키기 위해 뜯어고친다. 나의 오리지널리티도 부재하고 참고한 글의 탁월함도 사라진 그저 한층 더 비참해진 글이 된다. 그걸 다시 읽고 내 글쓰기가 얼마나 비참한지 한 번 더 깨닫는다.
이건 글쓰기의 사례이지만, 운동, 프로젝트, 공부,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모르니 이것저것 고치고 레퍼런스 하다 보면 내 장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어설프게 남의 것을 따라한 끔찍한 혼종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행위는 쉽게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어버리고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무가 빽빽한 아마존에서는 사방이 비슷한 풍경을 띄고 있기에 누구나 몇 발걸음 못 떼고 방향감각을 잃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숲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본인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묻는다면 방향감각을 잃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방황하기 십상이다.
작가가 평소에 건전한 사람이라면, 인간적인 면모, 공동체의 따뜻함이 필요한 순간이 옵니다.
S’il est normalement constitué, une heure vient où il a besoin du visage humain, de la chaleur d’une collectivité.
자책보다는 차라리 질책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스스로 묻기보다는 주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시다시피, 작가는 혼자 작업하고, 고독 속에서 평가받으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고독 속에서 평가합니다. 이는 좋지도,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Voyez- vous, un écrivain travaille solitairement, est jugé dans la solitude, surtout se juge lui-même dans la solitude. C e n’est pas bon, ce n’est pas s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