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소리 혹은 흥미로운 소리를 사냥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In a way, I am hunting sounds good sounds or interesting sounds. In many cases interesting sounds come to me.
어떤 면에서 저는 좋은 소리 혹은 흥미로운 소리를 사냥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흥미로운 소리가 저를 찾아옵니다.
11월 초에 제가 사는 곳에 때 이른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잔뜩 덮인 공간을 크리스마스 캐럴이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채웠습니다. 아직 크리스마스까지 거의 두 달이나 남은 상태였는데도 말이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많은 노래들을 듣습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 성탄절 성가 등 연말에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꺼냅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irstmas Mr. Lawrance입니다.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는 듯한 도입부를 특히 좋아합니다.
위의 문장은 모던 클래식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의 놀라운 작품들의 비결을 알려주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어쩌면 우리에게 절망감을 주기도 합니다. 놀라운 영감을 받아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는 말은 결국 천재들의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작품, 사상, 발견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천재들과 그들의 천재적인 영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흥미로운 소리가 저를 찾아옵니다.
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저는 좋은 소리 혹은 흥미로운 소리를 사냥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입니다. 영감은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영감은 자신을 찾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영감에 민감해지기"입니다.
릭 루빈은 창조적인 행위가 많은 부분 영감에서 온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한 영감이란 우리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감은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영감에 민감한 감각이 있어 그것을 캐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과 둔감해서 영감이 찾아온 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으로 <Merry Christmas Mr.Lawrence> 같은 명곡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감이 오기 전부터 좋은 소리 혹은 흥미로운 소리를 사냥하러 다녔습니다. 이건 그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보면 그가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비를 맞기도 하고, 북극으로 가서 빙하가 녹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를 채집하기도 합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그는 "산업혁명 이전 지구가 건강했을 때 쌓인 눈이 녹아서 생긴 얼음의 물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북극까지 간 것입니다.
그에게 찾아온 영감 뒤편에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경험, 흥미로운 소리를 찾겠다는 열정, 언뜻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감을 얻겠다고 북극까지 갈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극이 아니라 좋은 영감을 찾기 위한 노력이니깐 말입니다.
사실 이번 글은 아주 꽤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지난 몇 주간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오직 그 이유만이라면 어찌어찌 정해진 날에 올리긴 했을 겁니다. 영감 혹은 글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어떠한 글도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글감을 사냥하러 떠난 지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업작가도 아니고 전문 블로거라고 하기에도 뭐 한 사람입니다만 글을 쓸 때는 나름 진지하게 임합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아사미 폼재기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것처럼
멍청한 장난 같은 게 아니라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저로서는 부끄럽지 않은 글입니다.
라는 진지한 각오로 임합니다. 물론 가끔은 도저히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스스로 보아도 부끄러운 글을 올릴 때가 있습니다. 더 부끄럽게도 어떻게든 글을 쓸 생각을 포기한 채 그냥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영감을 얻기 위해 새로운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한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산책을 하며 사색하기도 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논문을 찾아보기도 해야겠습니다. 북극에 가진 못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습니다. 영감을 찾아 떠나면 자연스레 영감이 저에게 찾아올 겁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거장도 영감을 얻기 위해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비를 맞습니다. 영감은 천재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영감을 갈망하는 사람만이 자신에게 찾아온 영감을 낚아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