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근대인입니다.

망치가 말한다.

by 이다이구

망치가 말한다.


이 짧은 문장은 초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우상의 황혼>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입니다. 니체는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니체가 낡고 오래된 전통적인 가치를 망치로 때려 부수었기 때문에 이런 수식언이 붙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니체는 자신의 망치의 역할을 정확히 이야기합니다. 바로 파괴가 아닌 시험이라고 말이죠.


쇠로 된 거대한 육면체가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육면체가 안까지 철로 가득 차있는 단단한 물체인지 아니면 속이 텅 비어있는 불완전한 물체인지 시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망치로 두드려 보는 것입니다. 두드렸는데 쿵— 쿵— 소리가 나면 속까지 가득 찬 단단한 물체이고, 텅— 텅— 소리가 나면 겉만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물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우상들을 음차 포크로 두드리듯 망치로 두드린다.

<우상의 황혼>


이것이 니체의 망치입니다. 파괴와 저항의 도구가 아닌 검증의 도구입니다. 니체는 이 망치로 온갖 거대한 사상과 가치, 그리고 종교를 두드려보고 속이 비어있는지 꽉 차있는지 확인해 본 겁니다.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현대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현대인 필수품 O가지" "바쁜 현대인을 위한 OOO" "현대인의 고질병 OOO" 이런 식으로 말이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신을 "현대인"이라 지칭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단어에 대해 망치질을 해본 사람은 없죠. 우리... 정말 현대인 맞습니까?


현대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흔히 세계대전 이후 냉전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를 현대와 근대의 기준점으로 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시기일까요? 현대인이나 근대인이나 육체적으로는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건 우리의 사상이겠죠.


근대를 지배하던 사상은 모더니즘입니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죠. 이항대립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맞는 건 맞는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죠. 선과 악이 뚜렷하게 존재했습니다. 합리적인, 논리적인 정답이 존재했고 그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오답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 논리적인 정답과 질서 안에서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모더니즘적 사상은 인류에게 큰 발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과학이 발전했고 야만적인 왕정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사회를 구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가져다준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바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환경파괴, 제노사이드, 인종차별, 식민지배, 아동학대, 노예제도 등 인류는 "정답"이라는 라벨만 붙여주면 어떤 극악무도한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때 인류는 세 번째 세계대전이 발생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1960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대학교 교양시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이항대립을 스펙트럼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유명한 이항대립의 탈구축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성주의와 합리주의 아래 하나의 정답 아래 표현되면 문학과 예술은 더욱 다양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정답과 오답, 옳음과 그름으로 나뉜 세상은 혐오와 퇴폐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현대인의 대한 지루하고 긴 설명이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현대인이 맞습니까? 만약 우리 삶에 정답이 정해져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 정답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20세기, 아니 어쩌면 16세기 사람과도 다를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16세기 사람과 육체적으로도 똑같고 사상적으로도 똑같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근대인입니다. 만약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이야"라는 이항대립적인 생각 한다면 여러분은 근대인입니다. 과학과 논리만이 절대적 진리일 뿐 나머지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너무나도 근대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 근본주의가 현대적인 사상이라고 오해하지만 전혀 아니죠.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과학에 대한 맹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 근대인입니다. 지극히 근대적인 이성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 사상으로 근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근대인입니다. 하나의 정답을 정해놓고 그 틀 안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않으려고 하고, 그 틀에서 빠져나온 사람에게 몰매를 던지는 근대인입니다. 이제는 망치를 들어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은 벌써 60년이 된 사상입니다. 몇 년만 더 지나면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에도 망치를 들이대도 두드려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죠.


더 이상 늦어질 순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에 얼른 망치를 힘차게 휘둘러야 합니다. 텅— 소리가 날 정도로 말입니다.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니체가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텅— 소리와 함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갑니다. 여전히 정답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답은 내가 정한 정답입니다. 제대로 된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거인의 문장 2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최근 제 스스로에게 망치를 두드려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써온 글들에 진심이었다는 것에는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거인의 문장 시리즈의 형식과 주제가 제 자신에게 하나의 정답 또는 틀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최근에 받았습니다. 망치로 거세게 내리쳐보니 텅— 소리가 나버렸습니다.


오래된 사상과 전통에 망치를 두르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망치의 철학자처럼 저도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새로운 장르와 주제를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여러분도 늘 살아온 방식에 늘 해온 방식에 망치를 두드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텅— 소리가 난다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망치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