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불꽃이 아닌 그 너머를 봐라
Q | 이야, 이걸 볼 수 있다니 운이 좋았네
Q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절묘하게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는 누구나 넋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도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처녀신이자 달의 여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이 신전은 큰 화재에 휩싸이기도 했고 약탈을 당하기도 했고 종교적인 이유로 파괴되기도 했기 때문에 여러 번 시간여행을 해 본 Q도 완전한 모습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보는 것은 손에 꼽는 정도다. 보통은 파괴되어 있는 모습을 보거나 공사 중인 모습이었다.
Q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이 놀라운 불가사의를 천천히 구경했다. 신전에는 몇몇 성직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에페소스로 보이는 사람은 소수였고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전의 외곽을 반쯤 돌자 에페소스인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턱을 괴고 홀로 앉아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¹.
Q는 그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이곳에서도 홀로 외딴 곳에 앉아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실을 더욱 자명하게 만들었다.
Q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찾아낸 뒤 자신의 서류가방에서 상담 신청서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직업 특성상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데 요즘은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도저히 따라잡기 벅찰지경입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유행하던 것들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쯤에는 이미 트렌드가 바뀌어 있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변화에 대해 잘 아는 철학자에게 상담을 받아주세요. 감사합니다.
Q는 열심히 상담 내용을 읽었다. 그리곤 이를 어떻게 기원전 500년대 사람에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트렌드, 마케팅, 프로젝트 등 이 내용 그대로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물어보면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Q는 자리에 서서 어쩌면 좋을지 생각하며 신전을 둘러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 근처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². 까르륵 웃어대는 아이들 뒤로 상인들도 보였다. 그들은 에페소스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오리엔탈적인 장식물과 향신료, 그리고 옷감을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가 그렇게 잘되지는 않는지 신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Q는 그 무역상인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아직 사색에 빠져 있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다가갔다.
Q | 선생님 안녕하세요.
헤라클레이토스는 흠칫 놀라 Q를 바라보았다. 마치 다른 공간에서 순간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Q의 얼굴과 행색을 살펴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 | 당신은 에페소스인이 아니군. 외국에서 온 관광객인가?
헤라클레이토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에페소스인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본인도 에페소스인이면서 동시에 에페소스인들을 혐오하기 때문이다³. 하지만 Q는 누가 봐도 외국인 같은 행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는 경계심을 약간 푼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호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Q | 맞습니다. 꽤 먼 나라에서 왔죠. 하지만 관광이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무역 상인이거든요. 에페소스의 특색 있는 물건들을 구매해서 내일 중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뭐 겸사겸사 관광도 하고 있긴 하지만요. 그나저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무 말 없이 Q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Q를 우매한 사람으로 여기는 듯한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었다⁴.
Q |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 같아서요. 유행도 너무 빨리 변하고요. 어떤 때에는 에페소스의 조각상이나 장식품이 큰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누구도 흥미를 가지지 않을 때도 있고요. 참 유행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분명 제 나라를 떠날 때는 유행이었는데 막상 물건을 구해서 돌아가니 유행이 끝나서 큰 손해를 본 적도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지 이런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라는 말을 듣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Q가 헤라클레이토스를 찾은 이유였다. 상담 신청서에는 "변화에 대해 잘 아는 철학자"에게 대리 상담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Q는 "변화에 대해 잘 아는 철학자"라면 도저히 헤라클레이토스 말고는 다른 철학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말 그대로 "변화의 철학자"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 | 흔들리는 불꽃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바라보게, 외국에서 온 젊은이.
헤라클레이토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서 떠나려는 채비를 했다. Q는 난감해졌다. 아직 제대로 된 대답 없이 수수께끼만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철학자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 때문에 Q가 그를 찾아갔을 때마다 곤경에 빠지기 일쑤였다.
Q | 잠시만요. 선생님!
Q는 다급하게 헤라클레이토스를 붙잡았다. 어떻게든 그의 흥미를 다시 얻어내야 했다. 저번에는 수수께끼의 답을 얻기 위해 산속 헤라클레이토스의 거처 앞에서 이틀간 사정한 끝에 겨우 답을 들을 수 있었다. Q는 그때의 기억에 몸서리치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Q | 선생님께서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말하신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다름 아닌 물입니다. 우리 몸을 보아도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헤라클레이토스는 Q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헤라클레이토스 | 어리석은 소리일세. 물을 한 웅덩이에 담아두면 어떻게 되지? 잔잔하게 차 있을 뿐이네. 이렇게 정적인 물질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세상 만물로 변화할 수 있지? 반면 불을 보게. 불은 그 자체로 변화하네. 계속해서 흔들리지. 커졌다가 작아졌다 변화하지. 활활 타오르다가 이내 연기가 되어 조용히 사라져 버리지. 불의 이러한 변동성이 우주 만물을 이루게 된 것이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것이지. 이른바 판타 레이(Panta Rhei)⁵라네.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떠나려던 헤라클레이토스는 돌변하여 열변하기 시작했다. Q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철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가장 큰 도구는 다름 아닌 토론, 특히 반론이라는 것을 Q는 그동안의 철학자 대리 상담 서비스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 모든 것은 변화하지. 자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도 없네. 자네가 한 번 강에 발을 담그는 순간에 그 강물은 순식간에 흘러 저 멀리 가버릴 테니 말이야. 그 똑같은 강물에 또 발을 담그겠다고 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가는 짓은 어리석지. 그러니 자네의 질문도 아주 어리석은 질문이네. 자네는 결코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말이야.
Q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거상만 수십 명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 유행하고 무엇이 아닌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잡는 사람들이었죠.
Q는 좀 더 격정적으로 연기했다. 내심 자신의 연기에 감탄할 정도였다.
헤라클레이토스 | 허허.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자네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나에게 이로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군. 하지만 내 마지막 아량을 베풀어 그대에게 지혜를 선물해 주지. 불꽃은 시시각각 변화하지. 이리저리 흔들리고. 커졌다가 작아지고. 꺼졌다가 켜지지.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오직 정해진 법칙에서만 이루어지네. 모든 만물의 변화가 그러하지. 만물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는 정해진 법칙 안에서만 일어난다네. 그 법칙을 나는 로고스라고 부르지. 이 로고스는 신들도 거역할 순 없다네. 모든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 한 번 내려진 신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말일세.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헤라클레이토스 | 이 신전도 마찬가지네. 이 신전도 영원할 순 없어. 언젠가 무너지겠지. 불타 없어질 수도 있고. 또다시 세워질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오직 로고스 안에서 이루어진다네. 우리 눈에는 흔들리는 불꽃만 보이지. 불꽃의 흔들림을 통제하는 법칙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그 법칙을 볼 수만 있다면 불꽃이 어떻게 변화될지는 뻔히 보일 걸세. 그러니 외국에서 온 젊은이, 흔들리는 불꽃이 아닌 그 너머를 보게.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아무런 말 없이 갈 길을 갔다. Q는 점차 멀어져 가는 헤라클레이토스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Q | 일부러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또다시 이틀간 밤새 밖에서 사정사정할 순 없었다고요.
Q는 이미 작은 점처럼 작아진 헤라클레이토스의 뒷모습에 대고 사과했다. Q는 다시 한번 신전을 돌아보았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최대한 눈에 담아두고자 했다.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까르륵거리며 새로운 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놀이의 종류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전과 같이 까르륵 웃으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Q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앉아서 사색을 즐기던 그 자리에 앉아 헤라클레이토스와 나눈 대화를 기록했다. 기록을 마치고 Q는 주머니에서 시간 이동 장치를 꺼내 다음 상담자의 이름을 장치에 입력했다.
S-O-R-E-N-K-I-E-R-K-E-G-A-A-R-D
Q는 훗날 기둥 하나만 남게 될 이 웅장한 유산을 한참을 바라보다 입력 버튼을 눌렀다.
Q | 그나저나 배우를 해야하나?
Q는 방금 전 자신이 펼쳤던 열연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1. 모든 것은 변화한다. 판타 레이. 하지만 그 변화 속엔 변하지 않는 로고스가 존재한다.
2. 흔들리는 불꽃이 아닌 그 너머를 보라! 변화가 아닌, 그 변화를 통제하는 로고스에 집중하기!
1.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속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습이다.
2.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인들이 자신의 친구 헤르모도로스를 추방하자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3. 헤라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인을 자신의 친구인 헤르모도로스를 추방했다는 이유로 혐오했다. "성년이 된 에페소스인은 도시를 풋내기에게 맡기고 목매달아 죽어 마땅하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4. 헤라클레이토스는 교만하고 남을 쉽게 경멸하는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