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끌어내는 질문

소크라테스의 고민 상담 해설

by 이다이구

이 글은 <소크라테스의 고민 상담>의 해설입니다. 먼저 이전 에피소드를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못생긴 철학자


기원전 470년,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한 철학자가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로, 훗날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특징은 그의 외모가 아주 못생겼다는 것입니다. 현대에서도 외모가 주는 영향은 지대하지만 고대 아테네에 비할 바는 안됩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외모지상주의가 유독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어딜 가나 그의 외모로 인신공격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어쩌면 그의 주요 사상은 이러한 배경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인신공격에도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외모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육체보단 영혼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었으며 철학자라면 영혼 또는 정신으로 육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철학 때문에 그는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태연한 모습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죠.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훗날 아테네의 3대 철학이라고도 불리는 키니코스학파, 스토아학파, 그리고 에피쿠로스 학파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키니코스학파, 스토아학파, 그리고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나중에 Q가 만나 대화를 나눌 테니 여기서는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소크라테스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이 질문은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미술사의 길이 남을 걸작, <아테네 학당>에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철학자들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소크라테스의 모습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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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중앙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노인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고 손바닥을 땅을 향하도록 핀 사람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 그림 속에서 소크라테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림의 1/3 정도 되는 지점에 올리브색 옷을 입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남들과 달리 비교적 수수한 옷을 입고 있어 발견하기 힘들죠. 이 또한 소크라테스의 검소한 생활을 표현한 것입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지식인이 모인 아테네 학당에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소크라테스라면 당연히 주변의 지식인들과 열띤 토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 당대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을 붙잡고 토론을 했습니다. 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니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광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시선을 피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것은 순전히 그의 취미 생활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받은 신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델포이 신전에서 "아테네에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신탁은 보통 들어도 알쏭달쏭 알듯 말듯하게 은유와 상징으로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짧고 간결한 대답만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의아해했습니다. 분명 자신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지혜롭기로 소문난 사람들 특히 소피스트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했습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그들도 막상 몇 개의 질문을 받으면 길을 잃고 자기가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로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정녕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없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혹은 그런 변명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토론을 하기 위해—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매일 질문을 던져댄 것입니다.


지혜를 끌어내는 질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들어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소크라테스는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질문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을 들은 상대는 스스로 함정에 빠지거나 혹은 자신도 알지 못했던 큰 지혜를 얻게 됩니다.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조차 깊게 질문을 해보면 사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A: 정의란 악행을 삼가고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B: 악행은 무엇이고 선행은 무엇이지?

A: 악행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고 선행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B: 도덕은 누가 정하는 것이지?

A: 사람이 정합니다

B: 도덕을 정한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인가?

A: 알 수 없습니다

B: 그렇다면 도덕이 선한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지?

A:.....


이런 식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정의란 이런 것이다" "도덕이란 저런 것이다" 생각하지만 막상 깊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참고로 위의 질문과 대답을 계속 쭉 이어나가면 결국 우리가 이전에 만났던 니체의 <선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로 향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도덕이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대화법을 엘렝코스 혹은 산파법이라고 합니다. 이 대화법은 상대방을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일례로 소크라테스와 메논—소크라테스에게 전기가오리라는 별명을 붙여준 사람—의 대화를 담은 <메논>에는 기하학을 전혀 모르는 노예 소년에게 몇 가지 질문만으로 기하학의 여러 지식들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혜라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지혜를 꺼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방법은 현대 심리상담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직 적절한 질문으로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와 문제의 원인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정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섣불리 남들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정답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불리 제시된 정답이 아니라 잘 짜인 질문입니다.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답하고, 그 대답에 또다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고를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던 지혜를 꺼낼 수 있을 겁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