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의 마케팅 상담 해설
이 글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마케팅 상담>의 해설입니다. 먼저 이전 에피소드를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살던 에페소스는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에베소와 아데미 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모형을 만들던 데메트리우스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 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바울이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이후 이 선동이 에페소스 대중들에게 "바울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욕했다"라고 잘못 오해를 사서 에페소스 전체에 폭동 사태가 벌어집니다. 나중엔 시장이 직접 나와 사람들을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조금은 황당한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에페소스인들에게 아르테미스 신전이 얼마나 큰 자부심이었는지 보여줍니다. 10km 밖에서도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7대 불가사의를 처음 언급한 안티파트로스조차 7대 불가사의 중 단연 최고의 건축물 평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르테미스 신전과 관련된 기록들을 보면 우리가 상상하듯 오직 사제들만 출입할 수 있는 그런 신성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도시의 행사도 개최되는 공간이고, 순례자를 포함한 관광객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와서 놀기도 하는 공공 공간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헤라클레이토스도 이곳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기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홍수, 약탈, 방화, 그리고 종교적 이유 때문에 여러 차례 무너졌다 재건되었지만, 결국 현재에는 벽돌 몇 개와 기둥 몇 개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철학자"라고 하면 보통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인자한 철학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에페소스의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주변으로부터 오만하고, 괴팍했으며, 막말도 서슴지 않고 했던 인물입니다. 러셀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남을 경멸하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으며, 민주주의자에 반대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오만함은 단순히 그가 귀족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귀족의 지위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보단 그의 지적 능력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우월감이었죠.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위대한 철학을 창시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온전히 스스로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이루어낸 업적임을 밝힙니다. 역사적으로 실제로 그에게 스승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도시인 에페소스를 혐오했습니다. 그 이유는 에페소스가 자신의 친구인 헤르모도로스를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헤르모도로스가 추방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독재를 방지하고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을 추방시키는 도편추방제, 혹은 그런 비슷한 제도에 의해 추방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반민주주의 성향도 이해가 됩니다.
에페소스에 크게 실망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도심을 떠나 숲 속에 은거하며 에페소스인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물론 말년에는 병을 치료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에페소스로 돌아와야 했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배울 때, "그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주장했다"라는 짧은 소개와 함께 지나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그냥 멋모르는 고대인이구나"라는 성급한 평가를 내려버립니다. 심지어 철학 공부를 하는 사람 중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대인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는 그의 사상은 좀 더 깊게 관찰해볼 가치가 있는 사상입니다.
최초의 원소가 불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단순히 고대인의 미신적 과학 명제가 아닙니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관과 철학의 근원인, 판타 레이(만물유전설)와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참고로 판타 레이라는 말은 헤라클레이토스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 훗날 플라톤이 그의 철학을 평가하면서 한 말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 이전에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탈레스의 이론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사실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한 곳에 담아두면 물은 아무런 변화 없이 잔잔히 멈춰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정적인 원소에서 이 세상 만물이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은 달랐습니다. 불은 일단 그 자체로 계속 변화합니다. 일렁거리는 불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 숯으로 변하고 물을 끓이면 증기로 변합니다. 이렇듯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의 근원은 불"은 과학적 명제라기보다는 세상을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던 탈레스에 반해 "만물의 근원은 변화"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올바릅니다.
만물은 변화한다는 의미의 판타 레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가장 주요 철학 중 하나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뜻을 담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당신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강물은 쉴 새 없이 계속 흐릅니다. 우리가 발을 담근 순간에도 강물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 버립니다. 게다가 우리도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계속 변화합니다. 강물뿐만 아니라 강물에 발을 담그는 존재조차 계속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이 변화하는 이유는 모든 존재는 그 안에 대립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젊음 안에는 늙음이 있고, 생명 안에는 죽음이 있으며, 수면에는 기상도 있는 것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각 존재 안에는 그 존재에 대립하는 개념이 있고 모든 만물이 자신 안의 대립물과 투쟁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실제 세계를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는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대로라면 이 세상은 결국 투쟁과 무질서한 변화만이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세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분명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어느 정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래서 "로고스"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로고스는 쉽게 설명하면 "변화의 원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혼돈이 되지 않는 이유는 만물이 이 로고스라는 원리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 로고스 덕분에 사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로고스에 의해 만물이 하나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건 모순처럼 보입니다. 모든 세계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모든 존재 안에 대립물이 있는데 동시에 이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은 하나다." 서로 대립되는 두 개념이지만 결국 "기울어진 길"이라는 사실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리고 이 "기울어진 길"에서 위로 올라가면 오르막길이 되지만 내려가면 내리막길로 바뀌는 것 입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혼돈으로 빠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게 됩니다. 로고스를 알게 된다면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쪼개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로 묶이게 되는 것 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현상에 변화가 아닌 이 불변하는 로고스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불변하는 로고스를 알면 미래를 미리 예측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변화의 원리를 알면 그 존재가 어떻게 변화할지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현대 사회에 더욱 필요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죠. 매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미래가 불확실해집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변화 그 자체가 아닌 변화 너머의 원리, 즉 로고스에 집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