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철학의 차이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앙, 즉 논리적 증명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질은 아닌 것 같았다. 철학에서도 믿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고대 철학에서 우주의 질서를 믿었던 스토아학파처럼, 근대의 이성주의나 현대의 포스트모던 철학에서도 형이상학적 전제는 남아 있다. 과학 역시 세계가 일정한 질서를 가진다는 가정을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믿음의 유무가 아니라 믿음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차이가 자기부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는 자아를 내려놓을 것을 요구한다. 불교는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이슬람은 자신의 뜻보다 신의 뜻을 따르라고 말한다.
반면 많은 철학은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진취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것을 추구한다. 허무주의, 실존주의, 스토아학파, 견유학파 등 많은 철학 사상들은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의심한 데카르트도 생각하는 ‘나 자신’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종교는 왜 자아를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고, 철학은 나 자신에 끊임없이 매달릴까? 인간에게 자기부정은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실존주의적인 답변밖에는 떠올릴 수 없다. 나 자신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삶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뒤에는 책임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온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100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100만큼 불안하다.
군대에 있는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일정이 누군가에 의해 짜여 있다. 심지어 1년 뒤 정확히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알 수 있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그 편안함. 그 편안함은 전역 하루 전날 밤에 모두 깨져 버린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막막함이 잠들지 못하게 한다. 전역 전날 군인의 잠을 깨우는 것은 설렘이 아닌 불안감이다.
모든 것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만든 삶은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초인의 삶은 듣기로는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도 못 한 채로 정신이 나가 다락방에 누워 있는 니체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기부정하는 종교인들을 노예도덕, 줏대 없는 사람, 광신도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어쩌면 자기부정은 그런 인간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의 지혜로운 대처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