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것은 생존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은 2011년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자녀가 철학을 전공했다면, 그들이 취업할 곳은 고대 그리스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이다. 물론 코미디언답게 농담조로 한 말이긴 하지만 실제 철학이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우리는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할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철학이 왜 필요할까? 철학이 실생활에 정말 필요할까? 현대 사회에서 철학하면 떠오르는 의문점들일 것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철학의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는 철학하는 사람과 철학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철학은 모두에게 필수이다. 철학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철학은 배부르고 등 따습고, 할 일 없을 때 하는 건데, 어떻게 철학이 없으면 생존을 할 수가 없어?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먼저, 철학은 배부르고 등 따스울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인생에 고난이 찾아오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인생에 절망만이 있을 때 그 빛을 발한다. 예로, 석공 소크라테스는 가난했다.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은 무역상 시절, 타고 가던 배가 난파당해 모든 걸 잃고 타지인 아테네에서 새로운 철학을 탄생시킨다. 실존주의의 선구자 키르케고르는 인생 자체가 절망의 연속이었다.
이렇듯, 철학은 여유로운 부자나, 학자들이나 하는 '교양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절망에 무너진 사람에게 필요한 학문이다.
철학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학파에 따라 계속해서 그 정의가 변해왔다. 심지어 사전마다 철학을 정의하는 방식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정의하는 철학의 뜻은 '인간과 세상의 원리와 지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거야 말로 뜬구름 잡기, 교양학문이 아닌가? 싶은 정의이다. 물론 철학은 자칫하면 뜬구름 잡기 학문이 될 수도 있다. 아니, 현대의 철학들은 대부분 뜬구름 잡기와 같은 이야기이다.
철학은 '생각'과 같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취업문제가 있다고 해보자. 그럼 일단 생각을 할 것이다. 자신의 이력서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할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의, 어떤 업종의 회사에 취직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의 끈을 놓치고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대기업에 입사한 후 받은 첫 월급으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경우에 이르게 된다. 정말로 대기업에 취직하고 첫 월급을 받는 때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생각은 아니다. 철학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내 인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자유, 사랑, 배려, 성실, 용기, 정의 등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덕목 중 가장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 일단, 정의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정의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생각 본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고민하는 것, 일상에서 여러 가지 덕목이 서로 상충할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은 일상생활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철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육교 위에 뚱뚱한 사람을 떨어트려 기차를 멈춰, 5명의 인부를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5명의 인부를 희생해야 하는지 같은 트롤리 딜레마를 하루종일 고민하는 행위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추상적인 철학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철학은 너무 지나치다. 너무 추상적인 철학만 해서 철학은 그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추상적인 주제로 말싸움하는 학문'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필자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철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철학은 일상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철학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철학은 인간만 할 수 있다. ChatGPT의 등장과 함께 막을 연 4차 산업시대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AI이다. 인공지능의 등장과 발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순수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창작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넘보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진 완성도 면에서는 인간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곧 인공지능에게 따라 잡힐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철학은 아직 인간의 영역에 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철학은 실천으로 증명한다
2. 철학은 비정상적인 학문이다
먼저, 철학은 실천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모해 보여도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만이 의미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이는 실제로 본인이 무모해 보이는 일에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무모해 보여도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만이 가치가 있다고 누군가 그랬다'라고 하는 것은 부족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는 그 전제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물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될 수 있지만, 일단은 본인이 먼저 실천을 해야 비로소 철학은 그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러한 행동이 불가능하다. 스스로 어떤 전제를 세우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가 진리인지 아닌지 직접 실천하는 것은 현재까진, 그리고 꽤 미래까지도 불가능하다.
둘째, 철학은 비정상적인 학문이다. 이것이 사실 철학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철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여기서 비정상적인 행동이란, 생물학적으로 혹은 기존 사회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말한다. 가장 쉬운 예시는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재판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선처를 구하지 않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도 않았다. 소크라테스 같은 현명한 사람이 재판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결국 사형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감옥에 갇힌 후에도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가는 이러한 행동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정상적인 행동일까?
디오게네스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길거리에서 생활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살길 바랬다. 여기서부터 일단 정상적이라곤 할 수 없다. 심지어 세계 최대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 대왕이 직접 가르침을 얻고자 방문했을 땐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했다. 디오게네스가 그냥 미치광이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그냥 미치광이였다면 대제국의 대왕이 직접 시간을 내어 찾으러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와의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가르침을 얻었다. 디오게네스는 당시 사회관념에 정면으로 대항한 사례이다.
물론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준비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디오게네스처럼 옷 벗고 길거리로 나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철학은 분명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인간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철학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게 만드는 도구이자, 인간 고유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무엇일까? 바로 의미의 부재이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욱 편리하고 쉬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다.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낮에는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밤에는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잠에 든다. 인간이 참으로 다루기 편한 가축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철학하는 사람은 다르다. 철학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내가 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한다. 애초에 그것이 철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철학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조차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는 시대에, 철학은 개인에게 특별함을 가져다준다. 철학에는 정해진 답이 없기에 철학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한 철학을 발전시키고 실천에 옮긴다. 그것이 바로 개인에게 차별화된 특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매일이, 매 순간이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무대이자, 도전장인 것이다. 누군가는 덕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진정한 자유를 추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주어진 상황에 의문점을 제기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진정으로 존재하기 위해, 마치 끊임없는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하루를 항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곧 생존과 연결된다. 과연 의미와 가치가 없어진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말장난이다. 이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와 같은 문장이다. 그저 죽지 못하기에 살아가는 인생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철학이 그대를 다른 사람과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주고, 인공지능과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철학은 인간의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도구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한 사람이 비로소 철학을 접했을 때, 새로운 삶을 시작할 희망과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살아갈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철학하는 것은 곧 생존하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는 더욱 그렇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그리고 많은 부호들이 괜히 본인의 자식들에게 철학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많이 사람들이 원하게 될 것이고, 또 필요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진 이 이야기가 진정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철학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르치는 철학은 암기가 대부분인 지식적인 학문이고, 대중이 많이 아는 철학은 뜬구름 잡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철학을 배우고, 또 철학하는 법을 배운다면 철학이 필수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