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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Aug 28. 2021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날자

자기를 동물과 같은 취급하지 마라

최근 들어 자기 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생긴 현상 중 하나다. 같은 환경에서 누구는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누구는 우울감에 빠지는 것이 꽤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울 감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마치 새해에 일 년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같다.


누군가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아침에 운동을 나간다. 누군가 자위행위를 멈춘다. 누군가는 소비를 줄이고 돈을 모은다. 몸이 죽도록 싫어하는 일을 이성으로, 그리고 정신력으로 추진하는 것이 자기 계발이다. 

대중이 자기 계발을 시작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다만, 꼭 자기 계발을 열심한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


'야, 그런 걸 왜 하냐?'


이 짧은 말에 사람은 동요한다. 그래도 그 순간에 대답은 한다.

'야, 하니깐 엄청 좋아! 너도 해봐!'

'왜 하냐?'에 대한 대답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좋다고만 이야기한다. 이런 석연찮은 대답은 본인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그러게? 내가 이걸 왜 하지?'


사소한 의문은 자기 합리화로 이어진다.


'몸이 너무 힘들어. 오늘만 쉬자' (보통 하루만 쉬면, 자기 계발은 실패한다.)

'인간도 동물이야. 욕구를 정신력으로만 절제할 순 없어.'

'이건 나의 한계가 아니야. 인간의 한계야.'

'내가 인간인 이상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

.

.


그리고 이 상황은 주로 매년 새해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이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많지만, 앞에 나올 두 가지에 집중하겠다.

자신이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 더 자세하고 더 정확한 콘셉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정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날 수 있다.


자신이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을 빼기 위함이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을 위해서이다.

핸드폰 사용을 줄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이다.

자위행위를 왜 멈추는가? 음란물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 계발을 계획할 때, 목표를 함께 세운다. 이를테면, 5kg 감량, 한 달에 책 3권 읽기 등등이다.

하지만 그 목표가 자기 계발의 완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들은 한 번 더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


우리는 왜 살을 빼야 하는가?

 우리는 왜 건강을 챙겨야 하는가? 

우리는 왜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음란물에 중독되지 않아야 하는가?


대답은 단순할 수 있다. 좋으니깐.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는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니깐.

이런 단순한 대답은 '야, 그런 걸 왜 하냐?'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흔들리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에는 좋아도 지금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만 '나'가 아니고 현재의 고통받는 '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가 있다면, 미래의 나는 불명확하지만 현재의 나는 명확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미래의 보상보다 현재의 보상을, 현재의 고통보다 미래의 고통을 선택한다.


우리는 더욱 고차원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숭고한 목표의식과 신성한 행위를 통해 발전한다. '갑자기 뭔 헛소리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심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신경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숭고한 목표의식이라 함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다짐이다. 신성한 행위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 이성으로 본성을 컨트롤하는 노력이다.


인간은 동물이다


    인간은 분류학적으로 영장류 사람 속에 속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수 천년 간 전해져 오던 관념이 무너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인간을 동물과 동일시하는 관념이다. '아니, 아까 인간은 동물이라며?'라고 물을 수 있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시에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 인간이 동물이라고 해서, 인간이 그저 DNA 운반체라고 해서, 인 이 침팬지보다 조금 똑똑한 영장류라고 해서, 우리가 동물과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다르다.


    우리는 미지를 모험하는 탐험가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모험가이기에 과학을 탄생시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봄으로써 종교를 탄생시켰다. 과학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종교는 우리를 신성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도 과학과 종교를 탄생시키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수 천년 간, 수 만 년간 위대하고 신성했다. 그 사실이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관념 하나로 갑자기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거짓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위대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여타 동물과는 다르게 육체적 욕구를 이성으로 잠재운다. '육체적 욕구를 이성으로 잠재운다.' 이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문장은 인간을 고차원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 이 문장은 우리가 육체적 한계에 묶여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이어트를 위해 눈앞의 치킨을 먹지 않는 행동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음란물을 보지 않고 참는 것이,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이제 알기 바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위 행동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영장류 사람 속이 아닌 정말 '인간'말이다.


크래빙 이론


책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로 유명한 빅터 프랑클은 유대인을 참혹하게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다. 그는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점점 동물과 같아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상이 그들을 정말 동물과 같아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동료의 죽음, 잔인함, 참혹함에 무감각해진다. 이유 없는 혐오감과 적대감, 그리고 폭력성이 나온다. 빅터 프랑클은 이런 상황에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도덕이 될 수 도 있고, 집에 남겨져 있는 가족이 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당신을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숭고한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 말이다.


비행기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선 알맞은 높이를 설정하고 그 높이를 기점으로 포물선을 그린다. 하지만 역풍이 불면, 조종사는 더 높은 지점을 향해 날아야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만약 역풍이 부는데도 원래 높이를 향해 날면, 그 비행기는 원하는 목적지 전에 착륙을 하게 된다. 이것을 크래빙이라고 한다.


빅터 플랑클은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인간다운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을 그저 욕구대로 움직이고 DNA를 후대에 넘기는 동물로 보면 인간은 정말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추락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숭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신성한 행위를 하게 될 때, 더 나은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제야 인간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될 수 있다. 이 내용은 괴테가 약 250년 전 밝혀낸 사실이다.


우리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더 높이 날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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