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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Jun 13. 2023

2023.06.12 <용서>

글근육 키우기 04


에스키모인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드넓게 펼쳐진 얼음 평원을 아무 말 없이 걷는다. 화가 풀릴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걷다가 화가 풀리면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상대방을 용서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방식이 너무 싫다. 화가 풀릴 때까지 왜 얼음 평원을 걸어야 하는 거지? 날 위한 거라면 좋다. 그래, 좋아! 그런데 도대체 용서는 왜 하는 건데?


에스키모 28대 손으로 태어난 나는 올해 6살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어렸고 어른의 손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올해는 6살! 제 일을 척척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종종 화가 나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옆집에 사는 2살 터울의 형이 있는데 그 자식은 맨날 내 장난감을 부수어놓곤 한다), 할아버지는 화가 났으니 걷고 오라며 집에서 내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불만이었다. 화를 식히는 건 좋다. 그러나 내 장난감을 부서뜨린 일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


“어디 가니?

풀려고요.”

그래? 그런데 순록은 왜 데려가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순록을 끌고 가는 나를 보며 의아하게 보셨지만, 그렇다고 딱히 말리지는 않으셨다. 어차피 집에 들어올 테니까. 나는 두툼한 패딩에 따듯한 바지를 입고 머리에 모자를 쓴 채로 집을 나섰다.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화가 풀린 순간, 나는 순록의 등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왔다. 타인이 한 잘못을 용서해 줄 만큼 내 마음의 그릇은 그렇게 크지 않다. 나는 고작 6살이니까. 내 장난감은 소중하니까! 그러니 용서는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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