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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Jun 16. 2023

2023.06.16 <반복>

글근육 키우기 08


카산드라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게 과연 옳은 짓일까? 몇 년 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똑같은 시간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기는커녕 그들은 점점 더 퇴화해 갔다. 기운이 없다.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힘이 없다. 늘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심했다. 이런 걸 회의감이라고 하는 건가. 얼마 전, 박물관 안내자인 존이 회의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며, 우리가 어떻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며 비꼬았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다. 카산드라는 눈살을 구기다가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네모난 빨간 박스가 초록색으로 바뀌며 작은 알람 소리를 다. 이제 일할 시간이다. 퍼석한 초록빛 드레스 자락을 펼쳤다. 방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느라 구김이 졌다. 구김을 지우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카산드라는 노란색이 뜨문뜨문 보이는 풍성한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러고는 사다리 모양으로 땋은 머리카락을 보았다. 머리카락으로 숨겨놓은 충전 코드가 꼬이지 않았는지,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자세히 살폈다. 다행이다. 이상이 없다. 그때 유리창 너머로 존이 튀어나왔다.


[카산드라. 이제 네 차례야.]


카산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탄필을 꺼내어 뒤에 마련된 칠판 위로 말을 탄 사람들을 그렸다. 그릴 때마다 탄필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림이 그려진 칠판은 평범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울퉁불퉁한 벽처럼 보일 것이다.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나? 카산드라는 정해진 대사를 읊으며 계속해서 말을 탄 기사를 그렸다. 창 너머로 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말했다.


“안드로이드인가요? 굉장히 잘 만들어졌군요.


그들은 카산드라를 보면 감탄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관절과 어색함 없는 표정은 인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입에서 입으로 극찬이 오고 가고 있을 때, 카산드라는 얼굴을 바짝 구겼다. 또 듣지 않는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과 결과에 대해 그들의 과거를 읊어줘도 듣지 않는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는데 말이다. 카산드라는 퍽퍽한 탄필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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