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6 <쿠키 드림>
글근육 키우기 15
부엌에서 쿠키 굽는 냄새가 났다. 땅콩의 고소한 향과 라즈베리의 새콤 달달한 향이 어우러지게 났고, 버터 향이 약간 나는 걸로 봐선 오늘의 쿠키는 땅콩버터 쿠키인 모양이다. 땅콩버터 쿠키, 좋지. 흥얼거리며 방을 나선 키르케는 부엌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일사불란하게 쿠키를 만들던 도구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와장창창, 쿠당탕.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부엌 테이블이 난장판이 됐다. 테이블 위로 떨어진 도구야 그렇다고 치고, 오븐 트레이 위로 떨어진 도구는 어찌해야 할까? 오븐 트레이가 튕겨 오르며 물컹한 반죽이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키르케가 입은 펭귄 니트에도 물컹한 반죽이 튀었다. 이 상황이 몹시 못마땅한 지, 펭귄 니트를 내려다보며 키르케는 눈썹을 시옷 자로 끌어올렸다.
“계속하면 되지 왜 멈추고 그래? 이 집에 인간이라도 있어? 왜 갑자기 사물인 척해?”
눈코입이 달린 것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도구들에게서 시선이 느껴졌다. 약간의 민망함과 억울함이 전해지는 거 같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키르케는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반죽이 쓰레기통으로 날아갔고, 멀쩡한 반죽은 오븐 트레이 위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 라즈베리를 품으며 앉았다. 역시 마법이 최고다. 삽시간에 어질러졌던 부엌이 말끔해졌다. 구겼던 얼굴을 펴며 키르케가 말했다.
“오늘은 구수하고 상큼한 꿈 가루를 뿌리면 되나?”
그러자 도구들이 몸을 흔들며 답했다. 백마녀가 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쿠키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늘은 동네 아이들에게 쿠키를 선보이는 날이지 않은가? 어느 날보다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키르케는 개량 컵에 잼을 담고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땅콩의 구수함 속에 라즈베리의 상큼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꿈 가루도 적당히 잘 들어갔고, 숙성도 잘 됐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러고는 개량 컵을 흔들었다. 그러자 잼이 가루가 되어 반죽 위로 솔솔 떨어졌다. 동네 아이들이 예쁜 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이 통했나 보다. 쿠키 반죽이 부풀어 오르며 노릇하게 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