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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Jun 27. 2023

2023.06.27 <형벌>

글근육 키우기 16


“흐억.”


반짝 눈을 뜬 요한나는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상체를 숙였다. 한번 트인 숨은 멈추지 않고 거칠게 튀어나왔다. 붉어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오뚝한 콧대 아래로 콧물이 떨어졌다. 눈물과 콧물로 혼합된 액체가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짜다. 짠맛이 돈다. 사라졌던 감각이 느껴졌다. 가쁜 숨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하얗고 가는 손이 정신없이 목을 더듬었다.


거짓이 아니야. 목이, 목이, 붙어 있어?!’


분명 마지막 기억은 단두대였을 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두대의 칼날을 마주 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불씨로 흩날리는 거뭇한 하늘 아래 번쩍이는 단두대의 칼날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머리카락에 벤 케케묵은 탄내도 또렷했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선명했다. 요한나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흐느껴 울었다.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낮고 잔잔한 음성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요한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긴 테이블 끝에 중절모를 쓴 사내가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가 섬뜩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 한잔 주고 싶은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야. 본론만 빨리 할게. 녀석들을 처분해야 하거든. 그리고 그 처분을 네게 맡기려고, 이렇게 연옥에서 불러왔는데, 어때? 해볼래?”

“…누구를 말입니까?”

“잘 봐, 네 옆에 있잖아.”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옆으로 낯익은 형체들이 보였다. 눈살을 구기며 힘을 주니 흐릿한 형체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들은 라모트 백작과 백작 부인이었고 추기경과 창녀였다. 다이아몬드 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들. 요한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어깨를 들썩였다.


“어떻게 할래?”

“……?”

“용서할래?”


용서? 말도 안 된다. 용서라니. 말을 읊조리던 요한나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었다. 쳐다보는 시선이 더욱 살벌했다. 파르르 떠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더 이상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닙니다. 남은 건 그 사건의 억울함뿐. 내게 형벌을 내린 만큼 들에게도 마땅한 벌을 내려주세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텅 비어있던 테이블 위로 음식들이 홀연히 나타났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잘 구워진 빵의 냄새와 설탕의 달달함과 과일의 상큼함이 어우러졌다. 마치 살아생전 열었던 티 파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요한나는 덤덤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결박된 라모트 백작과 백작 부인은 강제로 입을 열어 빵과 샌드위치, 쿠키들을 욱여넣었고 추기경과 창녀는 온몸이 설탕으로 변했다가 녹아내렸다가 다시 원상태로 변하며 끊임없이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부와 사치를 상징했던 옛 관습 속에서 그들의 처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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