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9 <살수>
글근육 키우기 17
대나무로 빽빽하게 자란 숲 안쪽에 허름한 폐가가 있었다. 한차례 비가 쏟아져서 그런지, 폐가 주변은 서늘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기둥으로 세운 굵은 나무에서 눅눅하고 쓰릿한 냄새가 났다. 꼭 썩은 나무의 향기 같다. 그러나 그 냄새보다 코끝을 때리는, 지독한 냄새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피비린내였다. 피비린내가 지독하게 나는 곳은 폐가 대문 안. 그곳에 열댓 명이 쓰러져 있었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시신들이었다. 피로 흥건하게 고인 바닥은 조금만 움직여도 물을 튀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는 이젠 시징밖에 없었다. 널브러진 시체들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시징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몸을 틀자 검은 너울이 흔들거렸다.
‘이제 가야 할 곳은 내원의 정원이다.’
그러고는 폐가의 내원으로 향했다. 내원으로 가는 길은 어린 시절과 똑같았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내원과 연결된 커다란 원형 문이 있었다. 20여 년 전에 일이건만, 폐가는 그날과 변함이 없었다. 시징은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살기를 띤 칼날이 앞을 가르며 날아왔다. 검집으로 재빠르게 날을 흘려 넘겼다. 그러고는 상대의 복부를 있는 힘껏 가격했다. 상대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고꾸라졌다. 첫 번째 상대가 쓰러지자 다른 이들이 연이어 달려들었다. 검을 휘두르다가 화살이 날아왔다가 기둥을 뽑아 내던지며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 사이에 폐가 한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명을 씌워 한 가정을 파탄 낸 증거를 지우기 위해서이리라. 그러나 시징은 그것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제 일상을 파괴한 이들을 단죄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그리고 단죄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몰아붙이던 사람들을 모두 잠재우고 드디어 내원 안으로 도달했다. 붉은 난간을 가진 다리 너머로 작은 정자가 보였다. 청록색 기와와 붉은 기둥을 한 정자는 아버지가 살아생전 손수 만들어주었던 선물이었다. 시징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품에 넣어둔 검은 술병을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드디어 아버지의 한을 풀고 술을 올릴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검은 너울이 거둬지며 시징의 말간 얼굴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