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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Sep 15. 2023

영묘한 눈

내 눈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아침, 기분이 좋아야 할 순간에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유난히 잠자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왜 또 준비하고 나가야 하냐며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불만을 한숨과 함께 흘려보냈다. 아아~ 귀찮다, 그러면서도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아침 샤워를 끝내고 멀끔해진 상태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모니터 받침대 옆에 빼놓은 거울을 꺼냈다.

거울에 비친 얼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눈이었다. 반쯤 하얗게 변한 오른쪽 눈썹과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백색 반점이 보였다. 검은색 동공 주변으로 갈색 홍채가 자잘하게 주름졌다. 홍채의 주름은 마치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와 같았다. 아이라이너를 그리기 위해 거울에 얼굴을 바짝 내밀고 눈을 세밀하게 관찰하다가 보게 된 광경이었다. 비록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양새지만, 내 눈에는 숨겨진 기능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기능.

기능을 알아차리게 된 건 몇 년 전, 에버랜드를 방문했을 때였다. 방문한 달이 마침 10월이라, 에버랜드는 핼러윈 분위기로 화려하게 꾸민 상태였다. 처녀귀신과 뱀파이어와 좀비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고 마녀 머리띠를 쓴 채 귀신의 집을 찾았다. 에버랜드에서 선보이는 첫 호러 메이즈였나, 아마 그랬을 거다. 엄마와 삼촌, 여동생과 함께 호러 메이즈 안으로 들어갔다. 무섭다고, 잘해놨다고 하도 칭찬이 자자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 혼자만 호러 메이즈를 즐기지 못했다.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만 시큰둥했다. 오히려 가족이 지른 비명에 더 놀랐다. 분명 건물 안이 어두웠다고 했는데, 왜 내 눈에는 밝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너무 밝아서 들고 있던 손전등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던지, 숨어있던 귀신 직원들을 모두 찾았었다. 그렇다, 내 눈은 밤 눈이 매우 밝다. 이렇게 밤 눈이 밝으니 발생하는 문제점도 더러 있었다. 안 봐도 될 것을 간혹 보기도 한다는 거다. 이것이 두 번째 기능이다.


두 번째 기능.

두 번째를 알아차린 건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냈던 나는 구내식당을 주로 애용했다. 그런데 이 기숙사 식당이 하필이면 언덕 위에 있는 게 아닌가! 올라가는 길은 큰길과 지름길, 두 곳이 있었지만 큰길은 빙 둘러 가야 해서 시간도, 체력도 많이 소모됐다. 지름길이 훨씬 더 빨랐다. 단, 길이 어둡고 무섭다는 게 최대 단점이었다. 무서운 마음보다 빨리 밥 먹고 수면을 취하길 원했던 나는 항상 지름길을 선택했다. 지름길은 언덕을 가로질러 만든 산책로였다. 그날도 산책로를 반쯤 올라갔을 때였고,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어둑한 숲을 보게 되었다. 산책로에서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사람이 있을 수 없는 비탈진 언덕에 형체가 보였다. 딱 성인 키만 한 크기의 검은 형체였다. 사람일까 봐 무서워서 일단 부리나케 달렸다.

가파른 언덕을 빠르게 올라왔더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가슴이 아팠다. 구내식당 뒤편 가로등 아래에 서서 나는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켰다. 3~5분 정도 시간이 지나간 거 같다. 머리가 차분해지자 일말의 호기심이 들었다. 어떻게 저곳에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 작은 호기심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산책로를 찾았다. 그리고 검은 형체를 보았던 위치에서 주변을 살폈다. 언덕은 가팔랐다. 죽은 나무들이 쓰러지고 엎어져 걸을 수 없는 지형이었고 말라비틀어진 풀더미가 주변을 어지럽혔다. 형체가 있었던 곳을 찾아보다가 비석 없는 무덤을 발견했다. 선배에게 무덤이 있다고 말하니, 학교 다니는 내내 몰랐다며 놀라워했었다.


다행히 두 번째 기능은 영안이 트인 사람처럼 매일 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형체가 뚜렷했던 적은 어렸을 때 빼고 없었다. 그저 검은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그게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내 눈에 보이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세상은 이래왔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세상을 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나는 두 번째 기능을 조금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무형의 존재는 가끔 소름 돋게 만들지만, 공포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겐 삶의 스릴이었다. 거울에 얼굴이 비쳤다. 아이라이너 붓끝을 집중해 눈꺼풀에 라인을 그렸다. 라인이 흡족하게 잘 그려졌다. 화장하여 덮어두니 백반증은 보이지 않았고 렌즈를 낀 눈은 반짝거렸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일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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