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인권연대와
Q) 인사(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채민입니다. 대전충남인권연대와 인연을 맺고, 인권만사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에서 7년 정도 일하다가 KOICA(한국국제협력단) 태국 사무소에서 활동하고 5월 초에 한국에 들어와 쉬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대전충남인권연대를 알게 되어 함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Q) 태국에는 어떻게 다녀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14년 전에 코이카 봉사 단원(컴퓨터분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2년 동안 봉사 활동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 기회가 되면 봉사단을 관리하는 관리요원(현 코디네이터)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기회가 닿아 2년 전에 갔습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아이와 남편 모두 함께 나갔습니다. 14년 전에도 그랬고, 가기 전에도 그랬고 모두들 걱정 어린 말씀을 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 대책 없이 나갔다가 와서 뭐 할 거냐... 등 그런데 내 인생보다 나를 더 생각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ㅎ
미래는 모두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태국에서는 한국에서 태국으로 파견된 봉사단원의 안전담당 및 교육, 활동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Q) 보내주신 칼럼을 통해 태국이라는 나라를 더 관심 있게 보게 된 것 같아요. 태국은 입헌군주제이고 규제가 심한데 또 다른 면에서는 개방적이고 색깔이 다양한 나라 같아요.
어떤 나라든지 모두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태국은 관광객이 많은 나라라서 자칫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왕이 있고, 계급이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의 중심이기도 하여 많은 국제기구 사무소를 유치하고 있는 나라이기도합니다. 국경을 넘어 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많아(라오스, 미얀마 등) 태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도 상당합니다. 한인분들께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절대 태국인들과 송사에 휘말리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설사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좋을 게 없다는 뜻인 거겠죠.(우선 태국어도 안되지만요), 외국에 살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그렇듯 ‘경계인’의 삶을 경험했습니다. 저 역시 이주노동자였기에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Q) 이채민 님의 20대가 궁금합니다.
“나는 뭐를 할 때 행복하지?”
저의 20대를 생각하면 온통 방황의 시간이었지 싶네요. 한국은 어릴 때부터 방황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잖아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다음 스텝이 정해져 있죠, 방황도 하고 실패하는 것이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기다려주지 않죠, 개인적으로 방황도 많이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시간이었지 싶습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것 역시 그런 시간이었지 싶네요. 여성학 동아리를 통해 여성학과 사회학에 관심을 가졌고, 지식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싸움닭’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싸웠던 것 같습니다.
Q) 이채민 님이 생각하는 진보란?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늘 소수자의 목소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엄밀히 말해 소수자라기보다는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죠. “자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발견할 때는 언제나 잠시 서서 성찰할 시간이다”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성 노동 관련 입장이나 여성가족부 해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시민단체 내의 정부 보조금 사업 등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때 그 생각이 옳다 하여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질 수 없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운동도 변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패 없는 역사는 없고 모든 운동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보하는 것이죠, 다만 어떤 부분에서 미진했는지 그 실패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성찰해야죠, 그게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Q) 이채민 님의 20대를 상징하는 책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좀 오래된 책인데 두 권을 소개해드릴게요, 박종철 출판사의 ‘그의 20대(1997)’와 작가정신 출판사의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2001)’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이 방황의 20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20대’는 19세기 초에서 20세기말 사이에 살았던 혁명가, 사상가, 예술인들의 20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체게바라, 뤼쉰, 서태지 등 그들의 좌절과 방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은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이 거짓과 비극의 역사’입니다.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당함에서 오는 당황스러움과 혼돈으로 어찌할 수 없었을 때 많은 위로가 되었던 책입니다.
Q) 아 그렇군요, 이채민 님의 30대가 궁금합니다.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30대가 돼서는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전공이 사회학이었는데, 내가 사회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죠,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가 남의 얘기가 아니었죠, 그래서 우선 나를 문서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으로 딸 수 있는 자격증을 알아봤습니다. 지금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당시엔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자료를 모아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컴퓨터 관련 자격증 몇 개를 땄고 그게 계기가 돼 인도네시아에 컴퓨터 단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언어였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욕심이 늘 있었습니다. 영어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경험도 도움이 되었고요,
마침 한국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 베트남-인도네시아학과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등록 후한 학기가 지나 임신이 된 걸 알았는데, 휴학을 하게 되면 이대로 끝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산후 조리원에서도 수업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태국에서는 제가 태국어가 안되니 인도네시아 말이 더 그리워서 공부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외국인 대상 BIPA (Bahasa Indonesia untuk Penutur Asing) 과정이 온라인으로 개설되었습니다. 고비마다 그런 과정들이 있어 인도네시아어를 계속 공부할 수 있었고, 얼마 전 귀국 후 인도네시아어 관련 시험을 봤는데 지금 발표가 났네요, 제가 원하는 등급을 받아 기분이 좋네요. (웃음)
Q) 얘기를 듣다 보니,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사신 것 같아요. 활동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있다면?
이력서 보면 그래도 뭔가를 꾸준히 했구나. 수고했다 스스로한테 말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더라고요, 나 아니면 누가 내 노력을 알아주겠어요? (웃음)
출산할 때 노동조합 지부장이었습니다. 당시 4명으로 시작했고 녹록지 않았던 환경으로 여러 부침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통’이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조합원 누구라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툴들이 소개되었던 때여서 만들어서 배포했습니다. 이후 지부장이 뭐 하는 사람이냐라는 말은 안 들었습니다. 소통은 투명성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계기였죠. 아직도 그때 만든 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역사이자 노동조합의 역사인 셈이죠(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앞으로의 계획은 인도네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인도네시아어가 유네스코 지정언어가 된 점도 제게는 희소식이기도 하고요, 물론 (허락하는 한) 대전충남인권연대 인권만사 칼럼도 쓰면서요~ (웃음)
<<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깊이 고민하며, 공부하고, 투쟁하면서 살아온 이채민 회원님을 응원합니다.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계획에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