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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na May 29. 2023

태국에 사는 경계인

태국 총선을 바라보며..

부랴부랴 짐을 싸고 태국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외국인으로서 태국에 산다는  것은 ‘경계인’의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경계인이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서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때로는 이 ‘어정쩡한’ 상태가 문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어느 한쪽에 속할 수 없다 보니 나름의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그 과정이 무척 고되지만 오히려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정리하는 과정은 새롭기도 하다.   


경계인인 내가 태국사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단연 ‘정치’다. 처음엔 ‘왕’의 존재가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었는데,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태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푸미폰 국왕(라마 9세)을 보면서 국민 대부분이 칭송하는 위인이 있다는 것이 한편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태국이 ‘왕’이 있다는 이유로 ‘결합 있는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다분히 서양 시각이다. (물론 왕의 존재와는 별개로 태국 정치는 ’이상한 체제’임엔 분명하다) 문제는 ‘왕’ 자체가 아니라 그 ‘왕’이 어떤 ‘왕’이냐일 것이다. 오히려 체제 내에서 왕의 역할이 민주적으로 구성된 의회를 잘 이끌어가는 어떤 상징이 된다면 새로운 태국식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미소의 나라’라고 칭할 만큼 친절한 태국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놓고 충돌하는 정치는 어쩌면 태국인들에겐  불편한 그 어떤 것이기도 하다. 특히 ‘왕’ 얘기는 금기어이면서 외국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왕실모독죄’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안법’이다)가 있어 무척 조심스럽다. 그런 분위기에서 ‘왕’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한국을 기준 삼아 현 쁘라윳 총리의 퇴임을 요구하는 이들의 용기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부분은 대단히 안타깝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5월 14일 열렸던 이번 총선은 2020년 태국을 뒤흔든 민주주의 시위 이후 열리는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정치 신인에 가까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36)의 등장이었는데, 이는 아버지 탁신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과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이 젊은 여성 정치인 패통탄의 등장에도 불구, 태국 국민들은 피타 대표가 이끈 전진당에게 몰표를 주었다.


태국 정치사에 획을 그은 이번 총선을 보면서 때로는 격렬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태국의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정부시위군’으로 낙인찍히고 군부정권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오늘 태국에서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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