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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na Jan 28. 2024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거부한다.

프레임 변화가 필요하다.

(글쓴이 : 잘 다니던 연구원을 그만두고, 현재 계약직으로  코이카 해외사무소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세 달 후 백수가 될 예정이다.)


코디네이터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코디네이터 자녀에겐 학비 보조가 되지 않아 질문했더니 이런 답을 받았다. “정규직도 다 못 받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비정규직 관련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저 틀을 못 벗어나지 싶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곱씹으면서 나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정규직이 받지 못하는 혜택을 감히 비정규직이 누려서는 안 된다는 저변에 깔려있는 의식과 그 멘트를 당연하단 듯 내뱉는 그의 천박함이 느껴져서다. ‘꼬우면 정규직 해’가 비정규직에게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내놓은 답이다. 순간 ‘탁’ 느낌이 왔다. ‘아차, 내 나라는 조선이었지’  


언제였던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했던 때, 동기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맞는지,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맞는지 밤샘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두리뭉실한 결론으로 끝이 났지만, 여전히 이 둘 사이 어딘가 즈음에 늘 노동문제는 걸쳐 있다.


나는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다른 관점에서 비판했다. 먼저 비정규직의 꿈이 정규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동자 사이의 균열이야말로 자본이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니겠는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정규직’이 마치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궁극의 목표인 것처럼 포장시켜 놓는다.


‘정규직’에게는 ‘정규직’이니 불만 갖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 ‘비정규직’은 꿈의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비합리와 갑질에도) 인내하고 참아야 한다며 재갈을 물린다. 둘째, 여기에 탄력적 시간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 엄마 노동자를 포함한 돌봄 노동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어떠한가. 현실 속 비정규직이 가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리는 것은 많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인데, 그럼 이들은 안정된 일자리는 꿈도 꾸지 말란 말인가.  


이후(모두가 알고 있듯)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 노동정책이 됐다. 그렇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화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언제부터 이 나라가 이토록 ‘공정’ 문제에 민감했던가 싶을 정도로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 정작 진짜 ‘공정 문제’(연공서열, 비정규직 차별, 장애인 차별, 젠더차별 등 ‘공정’ 해야 할 부분이 어디 한두 군데랴..)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이는 노동조합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또 생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오히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괴롭히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현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든 ‘비정규직의 차별철폐’든 정규직 노조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공염불로 그치는 데 있다. 조합원들의 정서가 현실 노동세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부장의 리더십만을 탓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부장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조합원들의 이익에 따라 지부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로서 그동안 노동계에서 그토록 외쳤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이미 타국가의 사례도 많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성별·연령·직급에 관계없이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대표하는 말로 쓰이지만, 동일한 노동이라 하더라도 불안전한 지위(비정규직)에 있는 사람에게는 동일임금이 아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노동시장이 바뀌고 있고 더 이상 직업이 하나일 필요가 없는 N잡러 시대가 아닌가. 어쩌면 모두가 비정규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까딱하면 사용자가 AI 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비정규직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 구인구직 미디어 플랫폼만 보더라도 세계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의 본질을 논할 때가 아닌가.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내 능력을 더 원하는 사용자가 있다면 언제든 이직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커리어-가정 양립이 가능하고, 탄력적 노동시간이 보장된 안정된 급여를 받아야 한다.  


실제 프랑스는 총임금의 10%를 고용불안정에 대한 보상수당으로 주고 있고, 호주는 15~30%, 스페인은 5%가량의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특히 호주의 임금은 풀타임, 파트타임, 캐주얼 등 근로형태의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급여는 2주 단위 지급을 원칙으로 하며, 초과 근무나 휴일 근무 등에 대해서는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풀타임과 파트타임은 근로 시간에 준하는 각종 휴가와 근로 수당을 보장받는 반면, 캐주얼은 일한 날짜와 시간에 해당하는 급여만 받는다. 하지만 캐주얼은 안정적이지 못한 근로계약에 대한 일종의 보상 수당, Casual loading에 의해 조금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보수가 적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원한다고 한다. 어떤가. 그 나라라고 천국일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이런 정도의 노력은 해야 나라가 아니겠는가.


* 1) 연공서열을 마치 태초부터 있었던 절대적인 제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1960년대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60년이 된 구시대 제도일 뿐이다.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제도’가 이토록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2) 경향신문 2020년 11월 18일 자 기사, (하) 오랜 차별이 만든 ‘계급'.. 비정규직 정규직 연대는 가능한가https://m.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011182107005#c2b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본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인권만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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