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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Jul 21. 2017

굴욕이 아닌 숭고한 생존 작전

<덩케르크>(201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첫 실화영화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군이 탈출한 '덩케르크 철수 작전(또는 다이나모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1940년 5월에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으로 서부전선은 완전히 포위되어 섬멸될 위기에 빠졌고, 연합군은 각지에서 참패하거나 후퇴만을 거듭하던 상황에서 독일군에 완전히 포위되고 만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죽기만을 기다리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군인 수십만 명이 고립된 상황을 벗어나려 해상 탈출작전을 펼치고, 이에 성공함으로써 연합국의 항전 의지가 되살아나 연합군은 대반격의 불씨를 당겼다고 한다.  

영화는 구조를 위해 대기하는 1. 잔교에서, 2. 바다에서, 3. 하늘에서란 세 포지션에서 덩케르크 상황을  다시 그리고 있다. '포위되었으니 항복하라'는 전단이 병사들의 머리 위로 흩날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총상으로 죽는다. 겨우 살아남는 어린 군인 토미(핀 화이트헤드)는 구조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기적만을 바라는 수많은 군인 중 한 명이다. 덩케르크 해안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수십만 명의 병사들로 운집해있는 상황이지만 영국 해군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화상으로는 옅게 유추해볼 수 있는데, 실제 당시 영국은 전 세계 바다에 해군의 전력이 분산된 상황이라 병력 철수에 필요한 선박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선박 징발령을 내려 민간 선박을 최대한 끌어모은다. 2. 해상에서는 민간인 도슨(마크 라이언스)이 바다에서 보내는 하루를 그리고 있다. 도슨은 배의 선장인 자신이 배를 몰아야 한다며 직접 덩케르크로 향한다. 대대적인 항공 작전을 보여주는 3. 하늘에서는 공군들의 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독일군은 폭격기로 덩케르크 해상과 해안에 폭격을 가하고 잔교, 선박할 것 없이 철수하는 연합군을 격침한다. 영국의 공군 조종사들은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폭격기와 싸우며 최악의 상황을 막는다. 총 33만 8천여 명을 구해낸 영국의 철수 작전은 성공이었다. 고립된 형국 속 학살에 가까운 공격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에 도착하지만 살아남았다는 굴욕을 예상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기적과도 같은 이 철수 작전과 생존자들을 열렬히 환호한다.

첫 번째 시간대인 잔교의 주인공 어린 군인은 사실 영화상 단한번도 호명되지 않는다. 어린 군인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대열에 합류하는, 사실 누구였다 해도 상관없을, 그런 평범한 인물이다. 우리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 청년이 영웅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 탓할 수 없다. 방금까지 함께 뛰던 동료가 시신으로 들것에 실려 가고, 사방이 시커먼 연기로 불타고 있으며, 하늘 위로 적기가 나타나면 땅에 납작 엎드려 죽음이 스쳐 가기만을 기다리고, 간신히 구축함에 몸을 싣지만, 어뢰의 공격을 받아 그대로 익사할 뻔하기도 하고, 같은 생존자이자 아군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릴뻔(국가나 부대로 타자를 구분해 죽음으로 내모는 영국군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철수 작전을 '명백한 승리자'라 칭하는 신문 연설 읽고, 맥주를 건네며 환호하는 자국민들을 보고도 어떠한 감정을 결정짓지 못한다. 또다시 그는 상황을 살필 뿐이다.

두려움으로 약해지고 상처받은 병사는 두 번째 시간대인 바다에서의 도슨이 처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도슨은 선장인 자신이 직접 배를 갖다 줘야 한다며 덩케르크로 향한다. 한눈에 봐도 도슨은 용감한 사람이다. 도슨과 동승한 어린 친구들(피터와 조지)은 그를 걱정하면서도 동경하는 듯 돕는다. 바다에서 그들은 한 부상자를 구조하는데, 그 이름 없는 병사(킬리언 머피)는 잔뜩 겁에 질려 덩케르크로 향하는 사실에 기겁하고는 영국으로 가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도슨은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애들을 총알받이로 몰아야하냐'고 하며 덩케르크로 향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강조한다. 둘 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생기고 곁에 있던 어린 조지가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지고 만다. 도슨이 말했던 대로 어른들 싸움에 아이가 다친 꼴이다. 구조 중에도 병사는 피터에게 쓰러진 조지가 괜찮냐며 걱정한다. 처음엔 아무 반응도 없이 뭐든지 회피하던 그가 사람들을 구조하고 조지의 안부도 묻고 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조지는 죽었지만 피터는 괜찮다고 거짓말한다. 도슨의 눈짓을 받은 피터는 어른이 된 듯하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구조하는 것에 성공했는데, 사실 도슨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 어선이 구출을 도우려고 덩케르크로 운집한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다 나온 듯한 어선이나 호화로운 요트의 주인이나 누구 할 것 없이 말이다. '뭐가 보이냐'는 질문에 해군 장교는 이 민간 어선들을 보고 '조국'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시간대인 하늘에서는 가장 현명하고 노련한 공군 전문가들이 활약한다. 어떠한 갈등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공군은 마치 해군과 육군의 머리 위에서 공기처럼 그들을 수호한다. 정말 영국군에게 공군은 공기 같았던 것인지, 조국에 당도해 철수대열에 합류한 공군을 향해 육군은 '너희 공군은 뭐했어'라고 질책한다(외관상 공군이 가장 멀끔하긴 하다). 연료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유유히 아름답게 추락하는 공군은 언제나 최상의 옵션을 선택하고, 최고의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숭고한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 바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말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 마지막 프로펠러가 멈춘 파이어기는 하늘에 떠서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추락한다. 살아남아 독일군의 포로가 될지라도 공군은 안간힘으로 살아남는다.  







<덩케르크>는 세 번째 시간대 공군의 시점을 말하려 만들어진 것일지 모른다. 영화 전체를 꿰뚫는 이야기는 '생존기' 외엔 아무것도 없으며, 다양한 사건과 상황의 나열이다. 결과적으로 실제 가시화되지 않던 공군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수축하고 편집된 듯한 인상을 남긴다. 갑작스러운 익스트림 롱숏은 당황할 정도로 상황을 아득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처음 맞닥뜨릴 땐 이미지의 기호를 해석할 수 없을 정도의 숭고를 느낄 지경이었다. 그 익스트림 롱숏은 카메라가 공군의 시점으로 해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군이 활약하는 허공을 포함한 덩케르크 상황을 초월하여 전체를 비추려는 듯 현실로부터 아득히 멀어진다.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서 전체를 보고자 욕망하듯이 말이다. 여러 시점에서 상황에 충실한 여러 인물을 통해 다양한 사건을 '조합'한 결과는 역사적 사건을 초월하고픈 욕망에, 자료화면처럼 복무한다.

<덩케르크>에서의 생존은 분명 굴욕이 아니다. 생존 자체가 숭고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숭고한 이미지로 비추고,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초월한 시점에서 바라본다고 해서 현재가 결코 역사의 사건으로부터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장래에 강력한 힘을 가진 신세계가 구세계를 구하고 해방할 것'이라던 엔딩의 기사처럼, 지금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예상했던 과거의 어리석음을 꿰뚫는 지혜만이 현재의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줄 것이다.              
 

* 격투기가 비명을 지르듯 허공을 가릅니다. 등등, 누가봐도 '한스짐머' 스타일의 음악이라 약간 지겹달까,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컨택트>의 음악처럼 의미와 스타일을 한번에. 뭐 이런? ㅋㅋ


* 페친 재완님의 의견에 보탭니다. 토미는 대체 똥을 언제 싸냐고, 좀 싸게 해주라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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