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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Aug 09. 2017

나와 이웃,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현재하는 이야기

<택시운전사>(2017)

  영화 <택시운전사>(2017)는 우리를 1980년 광주로 데려간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로를 미끄러져 소풍 가듯 출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계엄군의 (학살에 가까운) 무력 진압을 목격한다. 우리는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외부인 김만섭(송강호)이 문제를 인지하고 광주시민의 의지에 동화되어 광주를 무사히 탈출해 세상에 진실을 알리길 바란다. 김만섭은 밀린 사글세를 벌러 광주로 향했을 뿐이고, 우리는 밝게 웃는 송강호의 미소에 이끌려 영화관에 들어갔을 뿐이다.

  김만섭은 콧노래를 부르며 택시를 운전한다. 운전하다 시위대를 맞닥뜨리면 학생을 향해 '데모하려고 대학 갔나', '호강에 겨워 똥 싸는 것들'이라며 익숙하게 차를 빼고 코 밑에 치약을 바른다. 홀로 딸 아이(은정)를 키우는 아버지 만섭은 밀린 사글세 탓에 목돈 벌 일이 필요하다. 위르겐 힌츠펜터(토마스 크레취만)라는 한 독일 기자가 남한의 심각한 정세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한국에 입국해 광주에 관련된 보도가 일절 없음을 알고 광주로 취재를 가려 한다. 만섭은 다른 택시에 예약된 손님인 피터를 낚아채듯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몇 일 재수가 없었던 게 큰돈 벌려고 그랬구나'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군의 폐쇄로 진입이 힘들지만 만섭은 온갖 노력을 다해 광주 시내로 들어간다. 손님이 '노 광주, 노 머니'라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사실 만섭은 자기 일(생계수단인 택시, 돈)과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므로 광주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 돈만 벌면 됐지 손님이 되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만섭을 향해 광주 택시기사들은 그를 질책한다.
  이런 만섭의 캐릭터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지, 역사(청산)가 무슨 대수냐'는 먹고사니즘의 태도를 인지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몰두한 주인공은 자신이 광주사람이 아니라 서울사람이며 광주가 아닌 광주의 '외부인'임을 강조한다. 겉돌고 외면한다. 그러나 만섭은 광주시민이 '무슨 잘못을 해서 당하고 있는게 아닌' 상황, 광주역에 모여 주먹밥을 나누며 외신기자를 반기는 모습, 맨몸으로 군인에게 두들겨 맞는 참혹한 풍경, 이 처참함을 카메라에 담으려 위험을 무릅쓰는 독일인 피터와 이웃의 온정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광주를 벗어나려 했던 방향을 되돌려 피터를 구하러 다시 광주로 들어간다.                                                           
 

  희생된 광주시민과 만섭이 구하려 했던 것은 외신 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진실'이다. 이 진실이 외부에 유출되는 일을 막으려는 사복 조(군)와 진실을 훼손 없이 탈출시키려는 시민 사이의 갈등이 첨예화된다. 우리는 '푸른 눈의 목격자' 피터와 피터가 가진 진실의 내용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피터가 광주에 취재 왔다는 표면적인 이유는 '돈' 때문이지만, 사실 대사 이면에 그가 설명하지 못한 숱한 명분이 있음을 대략 짐작한다. 이야기는 피터가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고 광주의 역사적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위르겐 힌츠페터는 그가 '김사복'으로 기억하는 만섭을 그리워하다 2016년에 별세한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비참하고 마음이 아픈 이유는 두 사람을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평범한 광주시민들, 구재식(류준열), 황태술(유해진)과 차기사를 비롯한 택시운전사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고 이를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죽은 이들을 구할 수는 없는 사실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만섭의 트렁크에서 서울 번호판을 보고도 그들을 보내준 검문소 중사(엄태구)의 지친 눈빛에서도 그의 희생은 예고되어있기에 슬픈 것이다.






  한국영화의 주인공들이 편모가정의 어린 딸을 구하려는 중년남성이고, 각성의 계기를 통해  정치적 선택을 하는 평범한 소시민 성이 강조되거나, 성공했지만 실패의 부채감을 안고 산다는 몇 가지 설정만으로도 지루하게 우려먹는 서사가 되풀이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만섭의 '먹고사니즘'은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현대인의 일면이고, 이것이 공감을 가로막는 우리의 태도였음을, 여전히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택시운전사>는 공감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악마적 권력자는 지금도 살아있다. 그와 그의 세력은 지금도 살아서 '회고록 금서 취급은 인권탄압', '계엄군 묘사 장면에 법적대응'을 운운한다. 살아있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회고록 따위를 쓰고, 기억을 왜곡시키며 온갖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판에 박힌 지루한 설정의 영화일지라도 역사적 비극에 공감하는 태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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