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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Sep 14. 2018

시간의 틈에서 만난 영화적 멜랑콜리

<고스트 스토리>(2017)

  커다란 흰 천, 구멍 난 두 눈, <고스트 스토리>(2017, 데이빗 로워리 감독)는 자신이 살던 집에 남게 된 한 유령의 이야기다. 인간의 시선에서 얼핏 자유롭게 보이는 유령은 언제나 공포와 환상의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이야기 속 환영(『맥베스』), 죽은 사람의 영(『햄릿』)처럼 산 자에게 복수를 명령하기도 했던 신비한 존재, 유령은 <영혼은 그대 곁에>(1989), <사랑과 영혼>(1990)의 애절한 사랑으로 돌아오기도 했으며, <퍼스널 쇼퍼>(2016)의 나를 불안에 시달리게 하면서 내면의 허무를 응시하게 하는 존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돌아보게 했다. <고스트 스토리>의 유령은 인간적 시선의 대상이 아닌 삶을 관조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M의 연인인 C는 차 사고로 죽은 후, 망령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유령은 홀로 남겨진 연인의 고독과 우울, 떠나는 모습을 지키고 서 있다. 유령은 낯선 사람의 일상으로 채워지는 변화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의 바람과 달리 집에 대한 기억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새로운 시간의 밀어닥침에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수백 년 전 집터에 살던 가족과 그 가족이 모두 죽고 백골이 될 때까지의 긴 시간에 놓이기도 하며, 살아있던 C 자신이 죽은 뒤 유령이 된 모든 시간, 시작으로 회귀하는 시간 전체에 놓인다.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유령은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비네팅(Vignetting) 처리된 둥근 모서리 화면은 구멍 너머로 세상을 보는 유령의 시선 같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안 돌아오려나 봐요’하고 자취를 감춰버린 꽃무늬 유령처럼, C 역시 벽 틈에 봉인된 M의 쪽지란 기억을 기다린다. 망망대해의 시간에 남겨진 M의 쪽지, 그 쪽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한 순간 유령은 흰 천만 남긴 채 사라진다. 존재 이유였던 쪽지가 존재를 무화한 역설적인 결말.



  한 줌의 메시지를 쥐기 위해 영겁의 시간을 버틴 유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환영 같은 시간을 본다. 우리는 흰 천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령의 시선으로 죽음과 무(無)라는 우주적 어둠 속 성운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어둠을 뚫고 어른거리는 무수한 이야기, ‘낡은 집’의 이야기는 우주라는 드넓은 천에 C를 느슨히 고정해줄 유일한 ‘의미’다. 낯선 이들이 모여 파티 장소가 된 집에서 한 남자(윌 올드햄)는 인간의 유산(‘베토벤 9번 교향곡’)과 무상함을 떠들어댄다. 인간은 유산을 쌓고 그 유산으로 기억되겠지만, 태양이 팽창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로 예견된 우주적 죽음 아래, 모든 기억과 유산은 결국 사라질 것이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남자의 일장 연설에 유령은 윙윙거리는 전구의 깜빡임으로 반응한다. “왜 이 집에 남고 싶어?”란 M의 질문에 ‘히스토리(History)’라고 답했던 C, 무라는 우주적 죽음을 배경삼아 빛으로 남는 이야기. 결말에 와서야 우리는 유령이 ‘히스토리’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일 작은 이야기를 쥐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마주했음을, 그리고 흰 천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나의 영화적 경험임을 감지한다.


  흰 천(은막, Silver Screen)위에 맺힌 그림자의 환영, 기억과 망각의 반복, 늘 보아왔던 세계를 곰곰이 관찰하는 유령의 시선처럼 관객인 나는 한 줌의 이야기를 얻길 바라며 영화적 시간 앞에 서 있다. 삶과 죽음, 실재와 가상, 나와 스크린의 세계란 시간의 틈에서 영화는 우주란 영원의 무(無)를 비추며 아름다운 고독을 영사한다. 어둠에서 영사기 없이 스스로 발광(發光, Led Display)하는 디지털 시네마의 변화 앞에 선, 100년 넘게 세상을 그림자로 비추던 낡은 은막이란 영화.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의 유령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을 자신의 운명과 두 개의 다른 시간 사이, 그 시간의 틈으로 삶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고스트 스토리>의 아름다움은 끝없이 새로운 시작으로 돌아가길 반복하는 영화적 경험의 멜랑콜리(Melancholy)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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