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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Feb 18. 2021

나이가 사람의 성숙을 나타내지 않는다.

- 나이는 숫자 넘어 혼의 질량을 담고 있다. -

Age is no guarantee of Maturity   - Lawana Blakwell




사람을 만날 때, 신상을 묻는다. 

고향은 어디인지, 어디서 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등등 묻는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친한 느낌이 들면 나이를 묻는다. 

나이를 통해 서열을 결정하고, 세로축으로 사람을 배열하여 호칭을 결정한다. 

살아오면서 배어있는 습관적인 질문이다. 

그 질문을 하지 않고 싶지만, 나이를 묻는 것으로 이제 너는 나랑 이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도 가하게 된다.


아직도 내 나이가 낯설다. 

그 나이만큼 정신적인 질량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어린아이가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채 타인을 대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처럼 화법을 이어가고 태도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이내 집에 돌아오면 긴장감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을 느낄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유명인사들의 언행이 불일치해서 비난과 질타를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기도 한다. 그네들도 사실 미성숙한 사람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가는 과정일 뿐인데도, 우리는 완성된 인간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전문 직업일수록 우린 완성된 품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틀로 보기 때문에, 그네들도 마스크를 쓴 채 대중 앞에 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나이답지 않게 색다른 면모를 보이면 신선하게 느끼다가도, 그 수위를 어느 정도 드러내야 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에 아예 정해진 나이에 맞는 품격을 보이는 것이 실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나이는 숫자라고 한다. 도전하는 자에게 나이를 이야기하면 핑계이며, 용기 없는 자의 무덤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도적인 나이가 있기에, 이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나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진입하거나 시도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타협을 하게 된다. 우회하는 삶도 그만큼 가치 있기에, 한 때라도 젊었을 때 하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말고 새로운 나이에 맞는 도전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30대였을 때는, 20대였다면, 40대였을 때는 30 때 그 나이였다면 하면서 주저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이가 들어도 똑같은 말을 할 가능성이 많음을 인정한다. 


나이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고루함을 나타낸다. 

사고방식이 고루하고 낡았다면, -값을 갖게 되고, 성숙도는 떨어진다. 

반면 사고방식이 새롭고 독특하다면 +값을 갖게 되고 성숙도는 높아진다. 

꼰대는 사고방식의 고루함을 넘어 유물이 되었기에, 전체 값이 음가를 가진 사람임을 나타낸다. 

시간이 흐른다고 성숙도는 높아질까?

아니다.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하다. 

자기 자신만의 아는 성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고 섞여야 가능하다. 그래야 사회는 다양성을 가지게 된다.  온전한 나로 설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성숙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난 오늘 어떤 성숙도의 나이를 가진 인간인지를 자문해보고, +값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하루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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