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
비싼 돈을 들여 산 가전제품이라고 해도 쓸모를 다하면 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세탁기나 청소기처럼 소모품의 경우 AS를 맡길지 모르지만, 대부분 몇 년 쓰다 보면 새로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인식도 있다. 냉장고나 TV도 예전 같으면 한번 사면 평생을 두고 쓸 물건이라고 자신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MP 3, CD 플레이어처럼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도 있다.
이 제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많은 전자 쓰레기 중 하나인 걸까? 시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한 스피커, 어린 시절 시험 성적을 올린 후 기념으로 받았던 CD 플레이어, 부모님이 사용했던 선풍기 등 역사도 사용자도 다른 제품들이 한군데로 모였다. 세운상가의 수리장인이 의기투합해 만든 ‘수리수리 협동조합’은 순간 작동을 멈춰버린 제품들이 새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2015년 ‘다시 세운’ 프로젝트와 함께 세운상가 거버넌스팀인 ‘세운공공’이 꾸려졌어요. 세운상가의 장점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뭐든지 고칠 수 있다’가 있었죠. 이 좋은 수리 기술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보통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거나, 대대로 물려받아 버리긴 아깝지만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된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총 300여 명이 수리수리협동조합을 통해 제품 수리를 신청했습니다.
세운상가에 있는 수리수리협동조합 사무실로 직접 찾아 오시거나 인터넷으로 수리 사항을 접수하면 됩니다. 수리 할 품목과 모델명을 쓰고, 사진을 첨부한 다음에 증상을 쓰면 됩니다. 접수 후 수리가 가능한지 여부는 개별적으로 연락이 가고 그 뒤로 자세한 견적 사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리 비용은 제품마다 상이한 편이라 견적 후에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추억이 담긴 제품은 천차만별입니다. 다만 오랜 시간을 담아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데요. 오디오 제품이 8~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오디오, 비디오의 메카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는 부분이죠.
세운상가 마이스터 장인으로 선정된 분들이 함께 합니다. 진공관 앰프, 오디오, 선풍기 등 최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산업, 전자 기기들을 다뤄왔던 장인분들 입니다.
네, 물론이죠. 오래된 제품의 경우 부품이 단종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아무리 제품을 고치려고 해봐도,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없으면 고치기 어렵죠. 또 한 가지 경우는 제품이 디지털화되면서 IC나 기판 형태가 바뀌어 버리면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단순히 오래된 제품이라서 고치지 못하고 혹은 최신 제품이라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수리는 기술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이 아날로그 기술은 산업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마치 오래된 제품을 다시 살려놓는 것처럼 오랫동안 잊혔던 세운상가와 수리 장인들의 가치도 다시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수리를 통해 기술과 감성을 함께 되살린다는 걸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말. 수리수리협동조합 남윤호
글│정은주 기자 (jej@i-d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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