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redemption)으로 나아가기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하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내 이야기든 상대방의 이야기든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은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얼마 전, 모임을 갔었는데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결말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분은 아주 오랜 시간 전문직 자격증을 준비하여 결국 쾌거를 이루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분의 이야기는 그만큼의 오랜 시간은 아니 지었지만, 몇 년 동안 전문직 자격증을 준비하였으나 여러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셔 안타깝게도 포기하였다는 이야기였다.
두 이야기는 청자인 나로서 서로 다른 반응을 하도록 만들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이야기는 성공을 함께 축하하는 등 긍정적인 감정을 담은 말을 건네줄 수 있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았다. 안타까움을 함께 나눠주었다. 막연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쉽사리 해줄 수는 없었다. 껍데기뿐인 위로 같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해피 엔딩' 즉, 좋은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말해주고, 또 자신이 듣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도 배드 엔딩보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선별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냐면 그것이 청자로 하여금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의사소통 하기 더 용이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배드 엔딩보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해피 엔딩은 결국 내가 무언가 결실을 맺은 내용이 담겨 있기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도 더욱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에는 '현재의 나'를 이룬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들은 같은 해피 엔딩이라 할지라도, 긍정에서 긍정으로 끝나는 이야기보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끝나는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오랜 노력 끝에 성공을 하였다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동안 고생을 하였지만 (부정),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긍정) 반전이 있다. 이러한 반전 요소는 그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준다.
정체성 연구자들은 시작은 부정적이었지만 긍정적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구원(redemption)'의 이야기라고 한다. 구원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미국적이고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구원의 이야기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 내 삶에 구원을 가져다준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구원의 이야기는 정체성 발달을 높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높은 웰빙(낮은 우울, 불안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 주는 이야기이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에서 부정, 부정에서 부정으로 끝난 '배드 엔딩'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드 엔딩으로 끝났을지라도 그 이야기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구원의 이야기 형태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과거에 흘러간 이야기 자체는 바꿀 수 없을지라도, 이야기로부터 도출해 내는 의미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러 번 취업 준비에서 실패를 하였지만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부정-부정의 이야기는 긍정의 의미 부여를 통해 '부정-부정-긍정'의 형태로 바뀔 수 있다. 이렇게 긍정의 의미부여를 한 '배드 엔딩' 이야기는 추후 나에게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해피 엔딩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수많은 좌절 경험이 있기에 해피 엔딩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좌절 경험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주는 의미는 해피 엔딩 못지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