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참 어렵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인 걸까?
뜬금없이 눈물 나게 보고 싶어 지면, 그 사람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배꼽에 벌레 들어간 것처럼 간질간질 그 사람 생각에 배시시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오면 그때부터 사랑인 걸까?
여기가 출발선이니 여기서부터 이제 사랑이 시작되는 거야라고 달리기의 출발선에 서서 '탕' 신호를 기다리던 옛 운동회의 신호탄처럼 정해지면 좋으렴만 우리의 사랑은 어느 날 뜬금없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지배하고 나 자신을 맥없이 무력화시킨다.
그 사랑으로 세상에 눈멀어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에 작은 스크레치를 낸 누군가에게 온화해지고, 이것저것 왜 내야 하는지 모르던 각종 세금에 그래, 그래 내가 우리나라 살림에 일조한다는 세상 인자함으로 대해주시며, 하늘은 파랗고 지적이는 새들은 노래하는구나 라며 사랑의 약기운에 모든 것의 의미를 행복이라는 껍질로 쌓아 이 세상 행복의 중심에 나를 잠시 세워두고 그렇게 사랑에 취해보는데.......
그럼 어디서부터 이별일까?
그 사람이 쩝쩝거리며 먹는 모습에 알 수 없이 미간이 찌푸려질 때, 더 이상 그 사람과의 만남이 설레지 않을 때, 다른 누군가가 내 눈에 호기심으로 들어올 때, 그때부터 이별일까?
이별이란, 누군가는 얇은 종이 한 장 같은 오해에서 시작되고, 누군 상대의 모습에서 느끼는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나의 초라함의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이고, 원하는 사랑이 모자라서 혹은 너무나 사랑해서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짐의 결정적으로 적합한 이유들을 될 수 없다. 처음 시작했던 사랑의 마음과 다른 모두 각자의 한계일 뿐.
이처럼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의 달콤함은 한순간 이별의 잔인함이 되어 돌아온다. 철도의 평행선처럼 모든 사랑이 일직선이면 아픔 따위는 없을까? 사랑과 이별을 말하면서 우리는 더 좋아하는 쪽과 덜 좋아하는 쪽으로 입장을 해석해 본다.
사랑에서 존재할 수 없는 50:50의 조건. 똑같은 애정과 똑같은 서운함으로 '내가 1개의 사랑을 줬으니, 너도 1개의 사랑을 줘', '내가 오늘 서운함이 2개였어 그러니 너도 2개만큼의 서운함을 가져' 이렇게 말처럼 쉽다면 이별이라는 것도 없을까? 그러나 정확한 공식으로 풀어 수학처럼 계산하면 나오는 답이 아니다. 사랑은 여러 연인들만의 고유한 공식이 있어 그것을 풀자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암호를 해독해야만 될 것이다.
누가 더 사랑했냐 누가 덜 사랑했냐의 입장은 결국 어떤 포지션으로 사랑을 했느냐인 것 같다. 지나간 사랑의 해석은 단지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해 준다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이 사랑했지만 더 많은 아픔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쉽게 잊히는 사랑이었을수도 있다. 결국은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각자가 감수해야 할 몫인 것이다.
없으면 늘 목말라하며 누군가를 갈구하나 막상 있으면 귀찮아했던 내 모순된 사랑은 어느 쪽이었을까? 열의 아홉은 아팠던 사랑이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꽃피는 이 계절 사랑이 오기를 바라며 그 사랑을 썼다 지웠다 오늘도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