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참 어렵다.>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각인된 찰나의 순간으로 멈춘 곳이 있다. 소중했던 사람과 영원할 것 같았던 어딘가의 그곳, 빛바랜 사진처럼 아스라이 흩어진 흔적들, 손끝에 닿을 듯 입가에 맴도는 기억 너머 아련함이 가득한 그런 곳이 있다.
추억을 담은 향기는 그곳을 더듬어 그때 그 시간으로 어느 틈엔가 너를 옮겨놓고는 열병을 앓게 하나보다.
시끌벅적한 카페도 아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분주한 유원지도 아닌 흔하디 흔한 바닷가 모래사장도 아닌 둘만의 기억이 담긴 특별한 곳에, 아니 어쩌면 한 사람만이 그곳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도로가 가로등 아래, 금요일 오후 마주 보며 빗소리를 듣던 창가, 426번 버스 맨 뒷 좌석, 어느 빨간 대문 집 담벼락. 세상 어딘가에 있으나 이제는 그 어디에도 없는 단 한 번의 장소. 둘만이 아는 비밀 공간의 암호 같은 곳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6차선 도로에 힘겹게 버티고 있던 지금은 철거된 낡은 육교가 있었다. 도로 건너편 육교 끝자락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선술집은 시간의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늘 그곳에 머물고 있다.
“어디야?”
“집 가는 중”
“나 술 한잔 했는데 … 데리러 안 올래 “
늦은 퇴근길에 받은 전화기 너머에 그의 술냄새가 풍긴다.
너는 얼큰하게 취해 위태롭게 서있던 육교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게로 건너왔지. 취하고도 취하지 않은 척 찡끗 개구쟁이 웃음으로 내게 와 술 냄새 품기며 달려와준 내가 좋다고 와라 안아주던 너였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곳이 참 이상도 하다. 내겐 아련한 새벽안개 같기도 하고 노란빛 가로등 같기도 하니 말이다. 그곳은 그곳만의 특유의 향기가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그곳을 지날 때면 그곳만이 지니고 있는 그 향기로 나는 현기증이 난다. 세상에 없는 향기로, 다시없을 향기로 말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버린 육교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 속에는 비틀거리던 육교가 그 자리에 있다. 그날의 공기가 그날의 거리의 색채가 가로등 불빛이 그곳에 멈춰있는 채 말이다.
내게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짙게 배어 있는 그곳.
지금도 그곳을 지나면 빨갛게 상기된 개구쟁이 얼굴을하고 내게 올 것만 같은 너의 그림자가 배어있나 보다.
계절이 흐른 자리에 난 여전히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