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을 걷듯, 그렇게

<사랑, 참 어렵다.>

by 태을



# A의 어느 날의 연애.


그녀는.

남자 친구랑 늦은 아침을 먹고 같이 누워서 철 지난 영화를 보며 주인공은 어떠니 내용은 이러니를 주고받으며 숨은 보석 같은 영화 발견에 하이파이브를 치고 눈 마주친 웃음에 문득 행복이 반짝였다. 영화를 보다 다시금 스르륵 졸린 눈을 비빈다. 돌아보면 어느 틈에 잠들어 있는 남자 친구 얼굴을 말없이 빤히 보다 그 품으로 파고들면, 잠결에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고는 품으로 끌어안아 같은 숨으로 새근새근 잠 속으로 빠져든다.


열어둔 창문 밖으로 봄바람이 일렁인다. 봄바람은 꽃비를 흩뿌리고 남자 친구 집 앞 작은 공원에서 새소리가 요란하다. 그녀는 선잠에 들리는 남자 친구의 숨소리도 그렁대는 작은 코골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웃음으로 서로 빤히 바라보다 삐죽 입술에 '쪽' 입맞춤으로 일어난다. 부스스해진 머리와 퉁퉁 부은 눈을 보며 서로 쓰담쓰담 머리를 만져주는 이 순간, 또다시 행복이 반짝였다.


켜진 TV에선 끝없이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지만 아직 더부룩한 배를 쓸어내리며 "우리 산책 갈까”라고 손잡아 주는 남자 친구 등에 매달려 그녀는 어리광을 부려 본다.


소박한 공원에 들어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다정하게 발맞쳐 누군가가 내어준 좁은 산책로를 걸으며 이렇게 길을 내준 사람들이 고맙다고, 주변에 보이는 온통의 건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를 궁금해도 하고, 만개한 벚꽃이 피어서 예쁘다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멋질 것 같다고 조잘거린다.


한창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들 곁을 지나는 예쁜 아가를 업은 젊은 엄마, 허리춤에 줄 끼워 강아지 산책하는 소녀들, 공원 중간에 놓여 있는 작은 정자로 이제는 제법 따뜻한 오후의 바람을 쐬러 나오신 어르신들을 스쳐 걷는다. 작은 산책 길을 몇 번 돌다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은 그녀는 가슴에 번지는 그 몽글몽글한 무엇에 툭 뱉어본다.


"결혼하면 이런 기분일까?"

"산책하고 같이 들어와 밥 먹고 웃고 떠들고"

"아마 그렇겠지"

"뭐 그럼 결혼 별거 아니네 흣흣"

"프러포즈야 크크크"


그러고 싶다 말하는 것 같은 남자 친구 눈에, 그렇게 말하고 웃는 그녀 입가에 행복이 가득했다.


그녀는.

계절마다 꽃피는 화려하고 멋진 꽃길은 아니어도 오늘의 보통의 산책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딛는 걸음에 마주하는 풍경 하나하나가 따뜻한 이야기였다고 느꼈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햇빛을 받아 짓는 미소처럼, 그 소리 없는 환영에 그녀도 미소 지었다. 수채화 같은 공원의 풍경은 마음속의 소음을 잠재우게 만들었다. 손바닥을 가슴에 조용히 포개 얹고 그리곤 콩닥콩닥 심장소리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여보았다. 손잡고 걷던 남자 친구의 끈적한 손바닥의 촉감도, 목젖까지 보이도록 웃었던 그 웃음도, 온화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뭉그적거린 나른함으로 하루를 함께할 수 있고 시시한 배달 음식을 시켜 좁다라한 탁자 위에서 십 년 함께 한 부부처럼 마주 앉아 먹고는 다시금 배부른 배를 통통거려가며 함께 이를 닦고, 지루한 넷플리스를 보는 모든 별거 아닌 것들이 특별한 무엇이 되는 순간들이었다고 오늘 그녀는 산책만큼 느긋한 보통의 연애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