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만이 정답일까?
"6시 반에 시간 괜찮아"
"그럼요"
"그럼**빌딩 1층으로와"
나는 당연히 오후 6시 반이라 생각하고 시간 된다는 얘기였는데
오전 6시 반이었다.
나갔더니 엄청난 사건을 맞고 계셨던 변호사님,
검사님, 판사님들, 뵙고 싶었던 분들이 모여서 아침에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유명인들이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걸 책으로만 봤는데
그때 직접보고 '그래 이게 진짜구나'
-유퀴즈 온 더 블록 중-
새벽 기상을 통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일들을 해내는 김유진 외국인 변호사님의 일화다.
시간만큼 공평하게 주어진 게 없다. 영민한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달라져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나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루틴을 배우기로 했다.
잠자고 있던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 그것이 쌓여 나의 빛나는 내일이 되는 시간 모두들 그것을 미라클 모닝이라 한다. 삶의 깨우침과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나는 이른 아침 시간보다 올빼미족처럼 늦은 새벽까지의 시간을 사랑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서 잠들기 전까지 오롯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 여긴 밤을 지나 어두운 새벽은 나의 안식과도 같은 시간이었기에 그 시간에 아무것도, 무엇가를 하지 않아도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최대한 잠이 버터 지는 시간까지 애써 깨어 있다가 자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른 아침 기상은 물론이고 오전 일찍 일어나 활동을 한다는 건 나로서 힘든 일이 된 지 오래되었다.
'미라클 모닝'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아침의 시간이 있다면 나에게는 늦은 새벽의 시간이 있었기에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못지않게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 않다고 자부하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거의 12시에 끝나다 보니 더더욱 아침의 시간을 활용하기란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거니?', '일이 늦게 끝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내 안의 무엇가가 자꾸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질문이 쌓일수록 그 물음의 해답을 할 수가 없었다. 수만 개의 변명을 늘어놓고만 있는 나를 마주할 때 세상 누구보다 못나고 비겁해 보였다.
그렇다고 당장의 변화를 줄 수도 없었다. 밤을 낮으로 지낸 수년의 시간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다' 모든 것에는 순리가 있는 법인지라 급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시늉만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찍 잠드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잠이라는 걸 무조건 줄여서 무엇가 얻겠다는 아둔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억지로 잠이 들고자 애쓰지 않았다. 졸음을 기다렸다. 몸을 릴렉스 시키기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과 방안의 조명을 낮추고 따뜻한 물 한잔을 준비 했다. 가급적 핸드폰은 들여다 보지 않았다. 대신 짤막한 일기를 글로 썼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뇌에 쌓인 피로감과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를 더러 내어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감정을 정리했다.
아직은, 매일을 꼬박 찬란한 새벽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미라클 모닝은 'AM 6:00'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들이 약속처럼 만들어낸 시간 속에서 덩달아 춤을 추려고 갖추지 못한 자세로 허공에 팔, 다리만 허우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 미래의 찬란한 시간 미라클 모닝' 이것이 지금의 키워드라면, 이것이 시작의 촉매제 역할이라면 나도 못할 건 없다. 나의 모토 '그래, 닥치고 읽자'처럼 '그래, 닥치고 해 보자'의 실천이다. 하다보면 정확한 나의 미라클 모닝을 찾게 될 것이다.
책 속에 삶의 지식처럼 먼저 실천하고 있는 누군가들의 지혜처럼 닮아보려 노력 중인 나의 각오에 파이팅을 보낼 뿐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비워진 그곳에 의미와 가치의 깨달음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수만은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더딘 답변이지만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오늘도 img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