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증후군의 위험성
클린스만 증후군(Klinsmann Syndrome) : 과거의 명성만을 믿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리더들의 특성
필자는 위르겐 클린스만 前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경질 사건을 보면서, 준비 없이 허풍만 떠는 리더들의 특성을 클린스만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클린스만은 과거 독일 국가대표 골잡이로 활약한 레전드 선수였다. 필자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94년 월드컵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축구 팬들을 좌절하게 했던 그 클린스만이다.
많은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처음 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에 부임했을 때, '그의 명성에 걸맞은 성과를 거둘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축구 지도자로서 보여준 부족했던 모습들을 재연할 것인가?'라는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가졌었다. 결과적으로 2024년 아시안컵 우승을 호언장담하던 위르겐 클린스만은 많은 잡음과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불명예스럽게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클린스만의 경질이 대한민국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슈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부진한 성적뿐만 아니라 팀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문제 상황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린스만의 경질 사건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클린스만의 모습을 닮은 리더들이 우리들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리더들(심지어 준비조차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리더들)이 갖고 있는 사고의 특성을 '클린스만 증후군 (Klinsmann Syndrome)'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재임 시절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리더이지만 리더십이 없었다는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공갈빵 같은 리더였다는 것이다. 몇 가지만 그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 번째, 리더로서의 준비성 결여. 그는 팀의 성과 창출을 위한 명확한 솔루션이 없었다.
현대의 세계 축구계는 선수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감독의 전술과 전략을 기반으로 다양한 차별적 경쟁력을 뽐내는 각축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무(無) 전술 감독', '해줘 축구(Do this for me football, 선수들이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는 의미)'로 일관하면서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다른 팀들을 제압할 수 있는 어떤 전략적 준비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표팀은 '유효슈팅 0개'의 굴욕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4강에서 탈락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훌륭한 선수 구성으로 '황금세대'라고 불렸으나, 그 결과는 어느 때보다 초라한 허울뿐인 '무능력한 금수저 축구'에 그치고 말았다. 이런 결과는 많은 축구 팬들로부터 감독뿐만 아니라 그를 선임했던 축구협회장까지 자리에서 내려올 것을 요구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물론 축구협회장의 책임도 크다). 이처럼 그는 과거의 명성만으로 대표팀 감독에 올랐을 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리더였던 것이었다.
두 번째, 리더의 역할 정체성 인식 결여. 그는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업가였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기 전부터 자신의 직무 이외에 과외활동과 별도의 사업에 치중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았던 선례가 있었다. 그런 그의 안 좋은 습관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여전했다. 해외 리그에 뛰는 한국 선수들을 관찰한다는 이유로 국내에 체류하는 기간을 최소화(?) 했으며, 대표팀이 중요한 경기를 앞둔 시기에도 방송 활동과 개인 사업 등으로 대표팀 감독의 직무에 소홀했던 모습을 나타냈다. 결국 그에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 직무는 자신이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 하나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책임감 결여. 그는 비겁한 리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대표팀의 안 좋은 경기 결과와 부정적인 상황들을 자신의 부족함이 아닌 선수들 탓으로 일관했다. 최근 국내 여론의 뜨거운 집중포화를 받는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처럼 대회기간 중에 선수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그런 상황에서 감독은 무엇을 했었는가?'라고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런 부정적인 상황을 '프로페셔널이라면 알아서 잘 풀어야 하는 문제', 또는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방관하며 알아서 해결되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심지어 감독 경질이 결정 난 후에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선수들 간의 불화 때문에 대회 성적이 부진했다'라고 밝히면서 '무책임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축구협회에서 경질이 확정되자 SNS에 인사를 달랑 남기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 마저도 자신의 성과를 미화하는데 급급했다).
필자는 이전에도 성공한 실무자가 곧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우리 주위에는 실무자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만, 리더의 반열에 오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리더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리더와 실무자의 역할 차이점, 그리고 리더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더의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클린스만 역시 선수로써는 성공했지만 리더로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클린스만은 레전드 선수에게 성공을 거두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조차 즐겼던 것 같다. '나는 레전드 선수이니까, 내가 뭘 해도 좋게 봐주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과거의 명성만으로 현재의 성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예전만큼 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유능한 실무자가 곧 성공하는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리더가 과거의 명성 만으로 리더의 역할을 부여받는 상황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준비되지 않은 리더 중에 일부는 클린스만 증후군(Klinsmann Syndrome)에 걸린 것처럼 리더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하면 또다시 성공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일한 생각을 갖는다.
우리는 이런 클린스만 증후군을 경계해야 한다.
리더는 실무자와는 분명히 다른 역할과 책임이 따르는 포지션이다. 리더로서 활동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와 고민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리더의 역할을 맡기는 것은 리더 본인은 물론이고 모두를 실패의 수렁으로 몰고 가는 공멸의 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리더 역할을 맡길 인재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검증을 해야 하며,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는 인재들에게는 충분한 리더십 육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갖춰진 인재들에게 리더의 역할 맡길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보다 희망적이고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며, 제2, 제3의 클린스만의 등장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